오피니언 중앙시평

당선자와 당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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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나라에서 선거제도를 처음 도입할 당시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을 법령에서 어떻게 표기했는지 찾아보면, 1947년 8월 12일 제정된 입법의원 의원선거법 제36조, 48년 3월 17일 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에는 당선인으로 돼 있다. 대통령 당선자의 경우 48년 2월께 유진오 박사가 작성한 헌법초안 제67조에 수기(手記)로 당선자라고 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용례가 별다른 논의 없이 국회헌법기초위원회 헌법초안 제56조, 본회의 헌법초안 제52조, 48년 7월 17일 제헌헌법 제53조에 이어져 당선자로 규정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헌법에 당선자로 명시된 것이 법률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최초의 대통령선거는 헌법조항에 직접 의거하여 국회에서 이루어져 별도의 선거법 제정이 없었다. 52년 제1차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국민직선제가 도입되자 제정된 최초의 대통령선거법령인 52년 대통령·부통령선거법은 제64조에서 당선인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 후 대통령선거이든 국회의원선거이든 선거법령에서는 당선된 사람을 일관되게 당선인으로 표기해 왔다. 반면 헌법은 아홉 차례에 걸쳐 개정됐음에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을 당선자로 표기한 제헌헌법의 용례를 유지해 왔다. 헌법상의 당선자라는 용어와 법률상의 당선인이라는 용어가 평행선을 그려 온 것이다.

첫째, 국립국어연구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어사전에 당선자=당선인으로 표시되어 있듯이 두 용어는 혼용 가능한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이긴 하다. 그러나 법령상의 용어는 가능한 한 통일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건국 후 60년 동안 17대에 걸친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도 헌법상의 용례와 법률상의 용례를 통일적으로 정비하지 않은 입법상의 잘못은 차후 헌법 개정이든 법률 개정이든 개선돼야 한다.

둘째, 당선자라는 용어의 ‘자(者)’자가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을 부르는 말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당선인이라는 호칭을 언론에 요청했다고 보는 견해가 세간에 있다. 그러나 제헌헌법의 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물론이고 제헌국회에서 당선자를 그러한 의미로 채택했을 리는 만무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만의 하나라도 이런 유의 오해가 없었기를 바란다. 성자(聖者)의 예에서 보듯 ‘자(者)’자가 언제나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 것은 아니다.

셋째, 대통령 당선자를 둘러싼 호칭 논란의 핵심 문제는 당선자라는 헌법상의 용례가 있음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당선인이라는 법률상의 용례를 사용하도록 요구했다는 점에 있다. 대통령직은 헌법에 의해 창설된 것이며 대통령직을 수행할 인물도 헌법 규정을 근거로 해 결정되는 것이다. 대통령선거의 방법과 절차를 정한 공직선거법도 헌법의 명시적 위임에 근거한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당선인 호칭의 법적 근거로 들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 공직선거법, 인사청문회법 등의 개별적 법률들은 헌법에 제정의 근거 및 효력의 근거를 두고 있는 헌법 하위법률들이다. 따라서 관례에 따라 당선자·당선인을 혼용하도록 놔둔다면 모르되 굳이 당선자와 당선인 중 하나의 용어로 통일시키기를 원한다면 대통령직의 발원지인 헌법에 규정된 용례를 우선하는 것이 정도(正道)라 할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 호칭 논란은 아마도 당선자 본인은 의식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당선자의 스타일로 봐서 호칭 문제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칭 논란에서 모종의 유추를 즐기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또한 대통령 취임 시 선서하게 될 헌법 준수 의지를-상징적이더라도-천명하기 위해서라도 당선 직후 전국 방방곡곡에 내건 당선 사례 플래카드의 ‘대통령 당선자’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김선택 고려대 교수·헌법학
◆약력=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쾰른대 법학박사, 고려대 법학과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