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문화硏 명예박사 받은 한빛문화재단 한광호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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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빛문화재단 한광호(76)이사장은 구두쇠로 정평 나 있다. 제약회사인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명예회장과 농약회사인 한국삼공의 대표이사 회장인 그는 재력가로 소문나 있지만 지금도 해외 출장을 수행원 없이 다닌다. 골프도 즐기지 않는다.

韓이사장은 그러나 문화재를 비롯한 미술품 수집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1962년 화폐개혁 직후 사들인 도자기를 시작으로 서화.조각.자기 등 개인 소장품만 1만여점에 이른다. 92년에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한빛문화재단 소유의 미술품도 1만여점이다.

특히 티베트의 불교회화인 '탕카'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韓이사장은 "내가 수집한 미술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 기쁨을 선사하는 것도 기업인으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韓이사장은 지난 2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영박물관에 97년 한국실을 개설한 데 이어 99년에는 서울 이태원에 화정박물관을 설립했고, 지난해에는 '티베트의 유산-한광호 컬렉션의 회화' 개인특별전을 여는 등 한국과 동양의 전통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韓이사장은 "그냥 좋아서 한 일인데 영예로운 학위까지 받아 매우 기쁘다"며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韓이사장은 한국삼공이 위치한 서울 평창동 뒷산 8천3백여평에 화정박물관을 신축 이전하려고 하는데 청와대와 가까운 군사보호구역이어서 허가가 안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 40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박물관 신축 건의 진정서를 내왔는데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장관이 체육관은 지어도 좋다고 하던데 돈도 못버는 박물관은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면서 혀를 찼다.

"기부를 하고 싶어도 세금 무서워서 못하는 곳이 우리나라입니다. 7억원을 벗어나는 초과분에 대해서는 법인세 29.7%와 일반 부가세를 합쳐 세금이 40%에 가까워요. 한국삼공 같은 조그만 회사는 금방 기부 한도를 벗어나기 일쑤죠. 지난 10년간 매년 법인세 30억~40억원을 내면서 재단에 기부를 강행해왔죠."

韓이사장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자식들한테 재산 물려주려고 들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냥 그럴 듯한 박물관 하나 남기려는데 그게 여의치가 않아요. 재단을 부 세습에 악용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죠. 그러나 옥석은 가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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