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어 달려 국제대회 때 답답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외국 선수들은 클래식 음악에다 영화·소설까지 화제가 다양하더군요. 나는 영어도 짧은데다 내용도 몰라 너무 답답했습니다. 국제화 시대인 지금은 운동 선수들의 지식·교양 학습이 더욱 절실합니다.”

 1980년대 초 국내 최고 테니스 선수로 이름을 날린 전영대(48·사진) 건국대 신임 체육부장이 신선한 제안을 했다. 전 부장은 건국대의 6개 스포츠부(야구·축구·농구·테니스·육상·골프) 체육특기생에게 새해부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도록 했다.

시대는 바뀌고 있는데, 후배들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3월부터 건대 스포츠부 소속 110명의 운동 선수들은 반드시 교양·전공수업에 참여해 졸업학점(145학점)을 따야 한다. 지난해 연세대가 농구·아이스하키부 등 일부 종목에서 ‘공부하는 운동부’를 시도하긴 했지만, 대학 스포츠부의 모든 학생을 상대로 하는 것은 건대가 처음이다.

화려한 선수 시절을 비롯해 대한테니스협회 전무이사로 해마다 수차례 각종 국제대회나 행사에 참석했지만 번번이 말문이 막혀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운동으로 성공하겠다고 올인했던 내가 너무 초라해졌다”는 전 부장의 말에선 지식에 대한 욕구와 후배 교육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처음엔 반발이 컸다. 팀 성적 저하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서울·충주 캠퍼스까지 이동시간에 대한 불만까지 터져 나왔다. 이에 전 부장은 강의실을 선수들 숙소가 있는 경기도 이천의 건대 스포츠과학타운으로 옮겨 놓는 수완을 발휘했다.

 함성이 울리던 숙소에 대형 강의실 4개와 컴퓨터 50여 대를 갖춘 사이버 강의실을 마련했다. 서울이나 충주 캠퍼스에서 교수·강사를 실어나를 셔틀버스도 확보했다. 전 부장은 “이렇게 되면 교수들이 선수들의 특성을 고려한 눈높이 교육을 할 수 있어 교육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운동선수는 배우지 못했을 것이란 선입견이나 불신을 씻을 수 있고, 이론과 지식을 고루 갖춘 스포츠 전문가를 키울 기회”라고 강조했다.

 전 부장은 선수 출신으로는 건대 체육부장에 처음 임명됐다. 대학 스포츠부의 총괄 운영과 유망주 선발 등을 책임지는 비중 있는 자리다.

그동안 교수들이 맡아왔으나, 김경희 건국대 이사장이 “전문가가 직접 나서서 부족한 점을 바로잡으라”라고 그를 발탁했다. 마산고-건국대-대우중공업 테니스팀에서 스타 선수로 이름을 날린 전 부장은 90년부터 모교 테니스팀 감독을 지내고 있다. 지난해 한국 남자 대표팀 감독을 맡아 20년 만에 세계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 본선에 진출시키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김종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