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산업연수생 문제점 진단-근로실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지난해 10월 19,20일 KBS-1TV의『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은 한국에 산업기술연수생으로 파견될 인도네시아인들이사전에 집체훈련을 받는 모습을 소개했었다.
언어.환경이 다른 나라에서 별탈없이 지내기 위해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낮은 포복등 군사유격훈련.봉체조등을 하는 장면을 흥미있게 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뺨을 때리며 모욕을 견디는 훈련까지 시키는 대목에선 대부분「뭔가 잘못되지 않았나」하는 의문을 품었다.
이들이 한국에서 겪는 인간이하의 대우야말로 이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열악한 근무조건과 국내근로자의 최저임금에도 미달하는 낮은 임금,체임.구타.모욕과 성폭행….
국제협력과 세계화의 상징이어야 할 외국인 근로자가 인신매매식으로 거래되는「현대판 노예」로 전락한 것은 정부의 안이한 자세와 단견이 빚은 비극적인 사태다.
다음은 지난해 7월25일 입국해 12월27일까지 5개월동안 취업했던 네팔인 근로자 9명이 겪은 체험담을 요약한 것이다.
『회사에 배치됐지만 기술은 커녕 한국말에 대한 교육도 한번 없었다.회사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이 맞지않아 먹을수 없었다.배고픔을 참을수 없어 외식을 위해 외출하려고 하니 경비원이 권총을 들이대며 제지한 적도 있다.오전8시부터 오 후7시까지 일하고 잔업까지 포함해 하루 14시간정도를 일했다.보통 50~60㎏,때로는 1백㎏이 넘는 원단을 나르는 허드렛일만 시켰고 기술은 가르쳐주지 않았다.우리는 한국에 올때 한국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지정받은 인력송출회사에 1천3 백달러의 수수료를 지불하는등 모두 2천달러씩 썼다.3년동안 한푼 안쓰고 벌어야 모을수 있는 돈이다.인력송출회사(企協과 인력공급계약을 한 현지국법인)에서는 한달에 5백달러를 받게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2백10달러에 불과했다.이 나마도 송출회사에서 대신 받아가버렸다. 월급의 20%만 보관하고 나머지는 집에 보내 주겠다고 했지만 정작 집에서는 한푼도 못받았다고 한다.고국에서 지고 온 빚을 갚기 위해 불법체류자가 되었다.이제 우리는 우리가 노예인것을 알고 이 족쇄를 풀기 위해 이 제도를 만든 사 람들에게 항거하기로 했다.』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은8만4천6백17명이며 이 가운데 합법적인 연수생은 3만2천8백52명,불법체류자는 5만1천7백65명이다.지난해 5월부터 입국한 1차 산업기술연수생 1만9천명 가운데 이들처럼 스스로 불법체류 자의 길을 택한 사람이 10%에 육박하는 1천7백18명이나 된다.
이들을 가장 괴롭힌 일은 한국사람들로부터 당하는 잦은 구타와비인간적 대우였다.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중인 네팔인 라주는 한국인 동료에게 쇠파이프로 머리를 맞고 피를 흘렸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제도의 모순에서 비롯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근로행위를 하는 합법체류자이지만 명목상 연수생이라는 신분상 제약때문에 오히려 불법체류자보다 훨씬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은 월 50만~80만원을 받는데 반해 산업기술연수생들의 임금은 절반수준인 월 25만~45만원(시간외 수당포함)에 불과하다.
특히 이들이 받는 월 기본수당은 2백~2백60달러로 국내 최저임금 수준인 월 26만원(3백20달러)에도 못미친다.한번 지정된 사업장은 바꿀수 없다.게다가 불법체류자는 지난해 2월7일부터 산업재해보상 혜택이 주어졌으나 연수생들은 적 용대상에서 제외되며 근로자가 아니어서 근로기준법도 적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일부사업주와 국내 인력송출회사가 이들을 제대로 대우할능력과 의사가 없다는데에도 있다.
7월24일 입국해 가죽공장에서 하루 11시간씩 일했지만 잔업수당을 제외한 임금을 한푼도 못받은 네팔인 카란(29)은 인력송출회사의 한국사무소로부터 아무런 해명을 듣지 못했다며 억울해했다. 이란인 일리는 지정된 연수업체를 나와 다른 곳에서 일하다 오른손을 다쳤고 파키스탄인 일리쉬에르도 같은 상황에서 손가락 4개를 잃었지만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민간단체들이 이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보이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YMCA 전국연합등 30여개 사회단체는12일 오후 서울중구 향린교회에서「외국인취업연수생 인권실태 개선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공대위는 국적에 의한 부당한 대우를 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정부를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키로 하는 한편 부당한 정부정책에 헌법소원을 내기로 해 외국인 근로자 인권침해로 인한 파장은 갈수록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李夏慶.洪 炳基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