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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바둑인생 22년을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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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창호 시대는 다시 올 것인가. 이 질문에 이창호 9단은 몇초간 침묵하더니 낮게 소리 내 웃었다. 오랜만에 듣는 이창호의 경쾌한 웃음소리. 11세 때 프로가 돼 22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창호 9단의 나이는 이제 33세. 얼마나 많은 신화와 전설이 ‘진정한 일인자’라고 칭송받은 이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졌던가. 2008년 새해를 맞아 가장 먼저 이창호 9단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창호’를 꿈꾸며 커 가는 바둑 소년과 바둑 소녀들에게 그가 해 주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지. 바둑은 그의 인생에서 무엇인지. 그의 시대는 다시 올 것인지…. 결혼 여부와 이세돌 9단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결혼은 하고 싶고 이세돌 9단이 최강이라는 정답을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프로입단 때(11세)의 기억이 나는가. 이때가 바둑을 직업으로 선택한 첫해다. 바둑에 몰입하게 된 동기는.

 “바둑엔 저절로 빠져들었다. 입단했을 때는 매우 기뻤고 막연하지만 바둑과 평생 같이할 것이란 느낌은 있었다.”

 -당시 이창호 9단은 말하자면 ‘어린 아이’였다. 그러나 첫해는 8승. 이듬해부터 44승-75승-84승-91승 식으로 끝없이 올라간다. ‘지지 않는 소년’ ‘기록제조기’ ‘외계인’ ‘신산(神算)’ 등 숱한 별명이 따라왔다.

 “어떤 기억은 뚜렷하고 어떤 것은 흐릿한 편이지만 얼음과자 얘기는 잘 모르겠다.”(아침에 얼음과자를 물고 걸어와 저녁엔 타이틀을 가져가는 소년. 그로 인해 일본을 위시한 많은 기사들이 바둑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로부터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창호 9단은 바둑을 통해 숱한 신화와 전설을 남겼다. 이 9단의 인생에서 바둑은 무엇인가.

 “어릴 때는 지고 나서 화장실 같은 데로 가 운 적도 꽤 있었다. 커서는 술을 마시기도 했다. 기쁜 기억도 아픈 기억도 많지만 그러나 바둑을 짐스럽게 느낄 때는 한 번도 없었다. 그 질문… 내 인생에서 바둑이 무엇인가에 대해선…나중에 전화로 알려주겠다.”(우승 134회. 거의 모든 기록을 다시 작성했고 국내 기사로는 연간 상금 10억원을 처음 넘겼다. 무엇보다 이창호의 놀라운 점은 자신의 수많은 적수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일인자’로 추앙받으며 동시에 마음으로부터의 존경도 함께 얻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바둑만이 아니라 정치나 스포츠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진정한 일인자였다. 그러나 이 9단은 바둑과 인생이라는 질문을 쑥쓰럽게 생각했던지, 아니면 아직도 장고 중인지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이창호’를 바라보며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그걸 즐길 수 있다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체력 쪽을 꼭 병행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체력을 많이 쓰는 운동선수에게도 머리 쓰기를 병행할 것을 권하고 싶다.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 늦게 알았다.”

 -2007년의 성적은 만족할 만한가.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결승에 많이 올라갔는데 세 번의 우승에 대해선 만족한다. 준우승이 많은 점은 불만이고….”

 -최근에 읽은 책은.(이 9단은 서치(書癡)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독서광이다.)

 “추리소설이다. 선물받은 경제 관련 책도 읽고 있다. 그런데 집중이 안 돼 진도가 안 나간다. 바둑 공부 평생 해도 5~6급을 면치 못하는 사람처럼 책에 관한 한 나 역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바둑계에서 올해는 이것만은 꼭 변했으면,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있나.

 “몇가지 있었는데…. 연간 스케줄이 미리 나와 한 일주일이라도 마음 놓고 휴양지에서 쉬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창호 시대는 다시 오는가. 많은 팬은 다른 사람이 아닌 이창호니까 다시 전성기를 되찾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 (웃음). 그게 말로 할 수 있는 문제인가. 나 스스로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진다 해도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 자연의 흐름일 것이다. 요즘엔 편하고 즐겁게 생활하며 운동도 한다. 조용히 집중하며 마음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승부는 그 결과물이기에… 자연스럽게 맡기고 결과에 승복하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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