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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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읍사(井邑詞) ⑨ 「정읍사」의 비밀을 푸는 데는 「달」이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서여사는 주장한다.
『자,이 공책을 드릴테니 노트해요.』 길례가 결심도 하기 전에,이미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사업이란 이렇게 전향적으로 해야하는 것인가보다.길례는 얼떨떨한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거역할 수 없는 자신감같은 것이 서여사에겐 있었다.
-고대에,달은 「달아」라 불렸다.「달아」와 「돌아」의 중간음쯤 되었을 것이다.지금도 제주도에선 「달」을 「돌」에 가깝게 발음한다.초승달에서 반달 보름달 그믐달로,달은 한달 테로 모양이 되돌아오기 때문에 「돌아오는 것」이란 뜻에서 이렇게 이름지어진 듯하다.그래서 1개월을 두고 한달이라 부르는 것이다.다달이 돌아오는 여자의 월경(月經)도 「달거리」다.
달은 옛날에 「도기」라고도 했다.우리나라 고대사에 관한 얘기가 모아진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한자로 「도기」(都祈)라 쓰여져 있다.「돌아오기」「돌기」의 뜻으로 그렇게 불렸는지,아니면 「돋는 것」 「돋기」의 뜻에서 그같이 불렸는지 잘 알 수는없으나 「돋기」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달은 예부터 남성 성기의 상징으로 삼아지곤 했기 때문이다.태몽에서도 달은 흔히 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있다.돋치는 것이 달이요, 남근인 까닭이다.
일본 고대 문헌에도 달은「남근」이나 쿠데타 같은 「궐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서여사가 좀 특별난 사람처럼 여겨졌다.이두사람은 모자간이라기보다 아주 절친한 선후배간 같다.
『일본말로 달은 「쓰키」(つき)라 하죠.우리 옛말 「도기」가일본에 건너가면서 생긴 말이에요.우리말의 「도」「두」음은 일본에 가면 대체로 「쓰」(つ)음이 되고 말아요.「둑」의 옛말 「도개」가 일본에 가서 역시 「둑」이란 뜻의 「쓰 카」(つか)가됐고,「두루미」는 「쓰루」(つる)가 됐어요.엄청난 우리 옛말이일본에 가서 일본말이 됐지요.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이런 사실들을선뜻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우리말이 일본어의 뿌리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우리 고대인이 일 본에 건너가 일본 땅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우리 고대인이 일본 땅을 지배했었다는 것은 8세기 이전까지의 역대 왜왕들이 우리 고대인이었다는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수주의 학자들이 애써 부정하고 있는 것이죠.학자가 아니 라고 하니까,일반 사람들도 그런가보다 하고있는 것 같아요.그러나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마련이죠.』 여비서 아가씨가 약탕관을 쟁반에 받쳐서 들어왔다.대추차였다.
서여사는,큼직한 분청 사발에다 손수 따라 준다.구수하고 달콤한 향기가 노트 위에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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