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가족관계 ‘평수’ 도 늘렸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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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S씨는 집안일을 아예 나 몰라라 하는 올케가 늘 마뜩지 않다. S씨의 올케는 외며느리인데도 결혼과 동시에 완전한 독립을 선포했다. 1년에 한두 번 제사가 있을 때만 시댁에 얼굴을 내민다. 그나마도 맞벌이라는 이유로 빠지기 일쑤다. 평소 안부 전화도 전혀 없다. 시댁 사람들의 관심이나 접근은 처음부터 차단했다. 아이 주라고 선물이라도 건네면 “부담스럽다. 이러지 마시라”며 정색해 내민 손을 민망하게 만드는 게 한 예다. S씨의 남동생도 결혼 후 달라졌다. 아내의 고립주의 노선에 철저히 순응하는 눈치다.

S씨는 “시누이 노릇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그냥 이 세상에 둘밖에 없는 남매끼리 내왕이나 하고 지냈으면 좋겠다”라며 속상해 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의 바람은 소박하다. 그냥 ‘남들 하는 것처럼’이다. 귀여운 조카들에게 철 따라 선물도 사주고, 홀로 사는 어머니에게 일이 생기면 피붙이끼리 의논했으면 하는 것이다. 동생이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만 해도 올케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실낱 같은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십수 년이 흘러버린 이제는 거의 포기 상태다. “가족사진에서 내 배우자만 가위로 오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가족이란 게 그럴 수는 없는 건데….”

전통적으로 결혼은 ‘한 집안과 다른 집안의 만남’이었다. 요즘 식으로 버전 업하면 남자는 아내 쪽 가족으로, 여자는 남편 쪽 가족으로 편입되는 셈이다. 이는 결혼 제도의 전제이기도 하다. 눈에 뭐가 씌어도 단단히 씐 연애 시절에는 대개 그 말을 가볍게 여기거나, 아니면 살짝 반감을 갖는다. 가볍게 여겼다면 현실의 쓴맛을 보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내 배우자와 결혼한 것이지, 그 집 식구가 된 건 아니다”라는 저항감을 가진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서로 다른 집의 일원이 된다는 데 대한 반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전통적 유교 사상에, 1차적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우리 정서로는 결혼 후 최소한 갖춰야 할 부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성의 발언권이 세진 시대에 비현실적 설정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드라마 ‘겨울새’의 시어머니(박원숙) 같은 사람은 여전히 현실에 존재한다. 그러나 S씨 말처럼 가족사진에서 내 배우자만 가위로 오려내는 건 불가능하다. 제도에 편입됐으되, 제도의 전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트러블이 생기는 건 필연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더하다. 자녀에게 할머니·할아버지나 고모, 혹은 외삼촌과 사촌형제 등을 가질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일일 수도 있다.

가족끼리 오고감이 잦아지는 때다. 새해에는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봤으면 한다. 가족의 둘레를 나와 배우자, 자녀 이렇게 좁게만 그리지 말고 원래 그었던 선에서 좀더 넓혀보면 어떨까. 아파트 평수만 늘리지 말고 나의 가족관계도 늘려 보자.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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