延邊축구의 작은 統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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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올해는 남북 선수들이 같이 뛰는 통일축구단이 구성될 수 있을까. 「경평(京平)축구전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지난 90년 중단 55년만에 평양과 서울에서 한차례씩 치른후 중단된 남북한 대표팀의 축구경기는 다시 열릴 수 있는가.5년전 서울 잠실운동장과 평양 능라도경기장을 감격의 물결로 휩싸이게 했던 통일축구의 열기는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깊게 각인돼 있다.그날 남북한선수들은 상대방의 유니폼을 바꿔 입으며 통일을 부르짖었다.
광복 50주년인 올해는 스포츠를 통일의 첨병(尖兵)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체육인들 뿐아니라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다행히 통일축구단과 경평축구전 부활을 위한 체육인들의 발걸음이 연초부터 바빠지고 있어 올해는 그와같은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어느해보다 크다.통일축구단의 초석은 중국 지린(吉林)省 연변축구단이다.지난해 12월15일 연길시에 있는 연 변축구단을 찾았다. 吉林省 연변축구단은 94년 후기 시즌에 남한 대우축구팀의 김종필(金鍾弼.28),박영수(朴永洙.24)와 북한 함북축구단의 임호(林虎.35),이광철(李光哲.30)이 조선족 축구선수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뛴 팀.
이미 시즌이 끝나 남북선수들은 모두 남쪽과 북쪽으로 돌아갔지만 구단사무실이 있는 「연변체육구락부」 건물에는 그들에 대한 추억이 짙게 배어 있었다.
감독과 선수들의 방에는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 곳곳에 붙어있었고 그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연길에 사는 조선족들에게 그들은 이미 「전설」이 돼 있었다.
연길사람들은 8월7일과 21일의 경기를 되풀이해 얘기하고 싶어했다.8월7일 5만명의 관중이 모인 연길시 인민경기장.
연변에 먼저 도착한 남한 선수들이 처음으로 뛴 이날 경기에서연변축구단은 93년시즌 갑급팀 1위를 했던 요령성팀을 맞아 3-2로 승리,인민경기장에 모인 연길 조선족들을 열광케 했다.
[延邊=河智潤특파원] 연변방송국은 이례적으로 이 경기를 생방송했고 그날 연길시 술집에는 대우의 「종필이」「영수」를 부르짖는 조선족들의 축배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감격은 계속됐다.
8월21일 이번에는 북한선수들도 참여했다.연변축구단은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전년도 2위팀 北京팀과의 경기에서도 2-1로승리하는 쾌거를 이뤘다.이날 北京경기에서는 중국축구협회가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뛴다는 소식을 듣고 갑급경기에 서는 전례가 없었던 국기게양까지 했다.
지난해 연변축구단의 성적은 6승7무9패.14개팀이 경쟁을 하는 갑급팀 A조에서 12위의 저조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남북한 선수들이 참여했던 후기리그만을 놓고 보면 성적은 발군이었다.8전 3승3무2패.처음 5경기는 무패였다.막판 두번의 패배도 임호와 이광철이 북한당국의 호출로 일찍 귀국했기때문이라고 구단관계자들은 믿고 있다.
경기력도 뛰어났지만 호흡은 더 잘맞았다.
길림성 연변축구단의 최광륜(崔光崙)단장은 『나이가 적었던 대우선수들이 북한의 임호와 이광철에게 형이라고 부르면서 무척이나친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또 남북한 선수들은 서로에게 모범이 됐다.남한 선수들이 철저한 자기관리와 연습으로 「프로란 무엇인가」를 보여줬다면 북한선수들은 「꾸밈없는 인정」으로 남쪽의 아우들을 토닥거렸다.
崔단장은 『95년 시즌에도 남북한 선수가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며 『지난 65년 중국 체전에서 1등을 했던 영광을 다시 찾고 싶다』고 밝혔다.
남북한 통일축구단의 씨앗은 지난해 연길에서 뿌려져 이제 광복50주년인 올해 서울과 평양에서 꽃 피울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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