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정해년 마지막 날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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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편은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폐암에 걸리나요?” 담당의사의 폐암 4기 판정에 아내인 Y씨(38)는 이렇게 항변한다.

 자상하고 성실한 그녀의 남편은 건강 관리에도 모범적이었다. 백해무익한 담배는 대학교 때 잠깐 접해봤을 뿐이며, 술도 한두 잔 즐기는 정도다. 기상과 취침 시간도 늘 일정했고, 뱃살을 예방한다며 적게 먹고 운동을 실천했다.

 그러던 그에게 병마가 모습을 드러낸 건 두 달 전이다. 처음엔 간간이 기침이 나왔지만 ‘괜찮겠지’라며 보름 정도 지냈다. 그래도 기침이 계속되자 그는 동네 의원을 찾았다. “담배를 피우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고개를 젓자 이내 편안한 표정이 된 의사는 “요즘 유행하는 감기가 좀 독하다”며 감기약을 처방했다. 사실 전문가라 할지라도 40회 생일을 목전에 둔 젊은 비흡연자가 폐암에 걸렸으리란 예상을 하기는 힘들다.

 이날 이후 그는 감기약을 1주일간 복용했지만 역시 효험은 없었다. 그는 ‘독한 감기는 약 먹어도 오래 가니까’라고 자신을 위안하며 병원도 안 가고 지냈다.

 하지만 보름 후, 기침은 더 심해지면서 열까지 났다. 겁이 난 그는 큰 병원을 찾았고, 이번엔 가슴 X-선 검사도 받았다. 결과를 본 담당의사는 “폐렴이 의심된다”며 입원 치료를 권했다.

 “폐렴을 감기로 착각하다니”라며 그는 동네 의원 의사와 자신을 함께 원망했다. 물론 이때만 해도 중병일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불행히도 “1주 정도 치료 받으면 좋아질 것”이라던 병세는 2주간의 항생제 주사를 맞았음에도 악화됐다. 마침내 주치의는 “심각한 병일지 모른다”며 폐 CT 촬영을 지시했다. 결과는 폐암 4기로 나타났다. 의사는 “이미 치료 불가능한 단계”라며, “지금부터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치료 목표”란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런 일은 비단 Y씨 남편에게 국한된 사연은 아니다. 폐암만 해도 10%의 환자는 비흡연자다. 반면 줄담배를 즐겨도 90세 이상 장수한 영국 총리 처칠 같은 사람도 있다. 또 많이 먹어도 날씬한 사람도 있고, 날씬해도 심장병이나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의학계에서 강조하는 소식·운동·금연·절주 등의 건강관리법은 무의미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건강 체질(유전자)을 타고난 사람은 흡연을 해도 폐암에 안 걸리고, 과음을 해도 간 세포는 건강하다.

 하지만 보통 체질인 사람이 해로운 생활습관을 즐기다간 각종 성인병과 암 발생 위험이 날로 높아져 병마에 시달리는 노후를 보낼 위험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흡연이나 당뇨병은 7년, 스트레스나 과음은 5년, 비만이나 고혈압은 4년 정도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Y씨 남편이 흡연자였다면 33세께 폐암을 앓았을 가능성이 있었던 셈이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오늘 하루만큼은 ‘지난 1년간 나의 생활습관은 천수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생각해 보자. 그러곤 단 한가지라도 새해부터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건강습관을 찾아보자.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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