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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50주년 격동의한국 현대50년사50大 그사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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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올해로 광복 50주년을 맞았다.45년 8월15일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은 잠시였고 분단.전쟁.쿠데타 등 한반도의 질곡은 오늘까지 끊이질 않고 있다.정치적으로는 통치권자들이안보와 경제발전 논리를 내세우며 체제유지를 위해 온갖 파행을 일삼았고 이 때문인지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각종 사건.사고들이 잇따라 그때마다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광복후 50년간 한반도를 뒤흔들며 현대사의 흐름에 큰 충격을 주었던 50대 사건.사고를 정리하며 되돌아보 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사건.사고의 선정은 본사 현대사연구소 이동현(李東炫.정치학박사)정창현(鄭昌鉉)전문기자가 맡았다.
[편집자註] ◇8.15 해방(45.8.15)=일본의 항복으로식민지배에서 해방됐지만 美.蘇가 38선을 경계로 각각 남과 북을 분할 점령,한반도는 비극적인 분단의 길로 들어섰다.
◇신탁통치안 반대투쟁(45.12)=美.蘇.英.中 4개국의 신탁통치결정에 좌파.공산세력은 찬성운동,민족진영은 반대운동을 각각 전개했다.
◇9월 총파업과 대구폭동(46.9)=남로당의 지령으로 노동조합전국평의회계열 철도노조 등이 파업에 들어갔고 특히 대구에서는경찰관 20명이 사망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김구(金九).김규식(金奎植)의 남북협상(48.4)=평양에서남한의 일부 정당.사회단체 대표가 참여한 남북회담을 열어 총선거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에 합의했으나 先외군철수에 미.소가 반대,불발됐다.
◇5.10 총선과 남북한 단정(單政)수립(48.8~9)=남한은 8월15일 이승만(李承晩)을 대통령으로 대한민국,북한은 9월9일 김일성(金日成)을 수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을 각각 선포했다.
◇제주 4.3사건과 여순반란(48.4.10)=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경찰서 등을 습격하며 52년까지 유격활동을 했고 10월에는 여수.순천주둔 국군 14연대의 남로당계 장교.사병이 반란을 일으켰다.
◇김구.송진우(宋鎭禹).장덕수(張德秀).여운형(呂運亨)암살(45.12~49.6)=한민당 간부인 宋과 張은 김구 추종자,좌익지도자 呂는 우익청년,金은 안두희(安斗熙)에 의해 각각 피살됐다. ◇한국전쟁(50.6.25)=북한의 남침으로 3년동안 민간인 4백여만명이 죽고 전국토가 황폐화했다.국내적으로는 분단이심화되고 국제적으로는 냉전체제가 본격화됐다.
◇4사5입 개헌과 민주당 창당(54.11.29,55.9.18)=초대대통령의 중임제한 철폐 개헌안이 부결됐으나 자유당이 4사5입 이론으로 가결시켰다.이에 야권이 총결집,민주당을 창당했다. ◇사라호 태풍(59.9.16)=영.호남 지방을 휩쓸고 지나가며 사망 8백30여명,부상 2천2백여명,실종 3백4명에 이재민 39만명을 냈다.
◇4.19와 제2공화국 수립(60.4.19)=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이승만대통령이 하야하고 개헌.총선을 통해 장면(張勉)이 이끄는 민주당이 정권을인수했다.
◇5.16 군사쿠데타(61.5.16)=박정희(朴正熙)소장이 이끄는 군 일부세력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했다.朴은 2년간의 군정이후 63년10월에 대통령에 당선,18년간 계속 집권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62.1)=경제성장.공업화 등을 목표로 62년1월13일에 발표된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면서 지속적인고도성장을 이루는 근간이 됐다.
◇6.3사태와 한일협정 조인(64.6.3,65.6.22)=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정부는 서울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했다.양국은 이듬해 도쿄(東京)에서 국교를 20년만에 정상화하는 협정에 조인했다.
◇베트남 전쟁 파병(65.2)=미국의 요청으로 한국군 4만7천여명이 베트남전에 참전,5천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1.21 무장공비 습격과 푸에블로호 납북(68.1.21,1.23)=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실패했고 이틀뒤美해군 정보수집함이 동해에서 북한 초계정에 피랍됐다.
◇중학 무시험제 실시(69.3)=망국병에 비유된 과외열기 근절을 위해 중학교 입학시험을 없애고 진학하는 제도가 서울에서 69년부터 실시되고 71년 전국으로 확대됐다.
◇와우아파트 붕괴(70.4.8)=판자촌 재개발 시범사업으로 지어진 5층짜리 시민아파트가 붕괴,33명이 사망한 이 사고는 설계잘못과 부실시공이 빚은 최초의 대형사고였다.
◇전태일(全泰壹) 분신자살(70.11.13)=『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한 평화시장 봉제노동자 全의 분신은 고도성장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을 자극하며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남영호 침몰(70.12.15)=제주~부산간 여객선 남영호가 거제도 남쪽해상에서 화물과적으로 침몰하면서 승객 3백26명이 익사,사고 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
◇새마을운동 시작(71.7)=『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농촌에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성공적인 국민운동으로 확산됐으나 5共이후 대통령 친인척비리와 농촌정책의 한계 등으로 위축됐다.
◇7.4남북공동성명(72.7.4)=남북한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천명하고 대화의 문을 열었으나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 때문에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유신체제 등장(72.10.17)=71년선거에서의 신승과 야당세의 부상으로 통치권에 불안을 느낀 朴대통령은 평화통일을 구실로 대통령간선제 등을 골격으로 한 유신헌법을 만들어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대중(金大中)납치(73.8.8)=유신정권은 해외에서 反유신운동을 펴던 朴대통령의 최대정적 金을 일본 도쿄에서 납치,강제귀국시킴으로써 국제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육영수(陸英修)여사 피격(74.8.15)=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文世光)의 朴대통령 저격미수사건이 발생,영부인이 사망했다.
◇유가파동(79)=세차례에 걸쳐 1백5%나 폭등한 원유가는 고물가.외채누적.실업증가등의 경제불안을 야기해 유신말기 정치.
사회적 위기를 가중시켰다.
◇부마(釜馬)사태와 10.26사태(79.10)=유신독재정권에강력한 정치공세를 펴던 김영삼(金泳三)신민당 총재의 국회제명 사태는 부산과 마산지역의 항의시위를 유발했으며,이는 朴대통령이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사망한 유신의 종말로 이어졌다.
◇12.12군사반란과 5.17쿠데타(79.12.12,80.5.17)=전두환(全斗煥)소장등 정치군인들은 정승화(鄭昇和)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군권을 장악한뒤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자 사회혼란을 구실로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 쿠데타를 완결했다. ◇광주민주항쟁(80.5.18)=군부독재 연장기도에 대해 광주에서 항의시위가 발생하자 군부는 공수특전단을 동원해 총검으로 진압,2백80여명이 사망하는 유혈비극이 일어났다.
◇언론통폐합과 언론기본법(80.11.12)=5共정권은 기자들을 강제 해직시키고 언론사를 통폐합하는 한편 언론통제를 목적으로 언기법을 제정,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美문화원 방화(82.3.18)=80년대 학생운동은 광주항쟁에서의 좌절을 계기로 반미(反美)라는 새로운 흐름을 나타내 부산美문화원 방화와 85년 서울.광주 美문화원 점거사태로 표출됐다. ◇장영자(張玲子)금융사기(82.5)=6천억원대에 달하는 건국후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은 대통령 인척등이 관련된 권력형 부정사건이었으나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5共 정치자금설등 숱한 의혹을 남겼다.
◇KAL007기 피격(83.9.1)=사할린 부근에서 항로를 이탈한 대한항공 보잉747기에 대한 소련 전투기의 공격으로 승객과 승무원등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하는 최악의 항공사고가 발생했다.
◇아웅산묘소 폭파테러(83.10.9)=서남아시아 순방에 나선全대통령을 수행하던 서석준(徐錫俊)부총리 등 고위관리 13명이버마 랑군(現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묘소에서 참배준비중 북한공작원이 장치한 폭탄이 폭발,숨졌다.
◇2.12총선거(85.2.12)=자생 야당인 신민당이 의석 2백71석중 1백3석을 차지,5共의 강제적인 정치운영이 사라지고 「투표에 의한 혁명」이 이뤄졌다.
◇남북한 고향방문단 내왕(85.9.20)=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고향방문단 1백51명이 각각 서울.평양을 방문,65명이 헤어졌던 가족을 상봉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박종철(朴鍾哲)고문치사(87.1.14)=朴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를 받던중 물고문에 의해 사망,폭력적인 공권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다.
◇6월 민주항쟁과 6.29선언(87.6)=민정당이 대통령간선제를 밀어붙이자 대학생 등 국민들이 20여일동안 전국에서 시위,노태우(盧泰愚)민정당대표가 직선제를 수용한다는 선언을 했다.
◇KAL858기 폭파(87.11.29)=북한 테러범 김현희(金賢姬)가 여객기에 폭탄을 설치,태국 밀림지역 상공에서 폭발하면서 승객등 1백15명 전원이 숨졌다.
◇직선제개헌과 13대 대통령선거(87.10.12)=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고 12월16일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김영삼과 평민당 김대중의 후보단일화 실패로 민정당 노태우후보가 당선됐다.
◇문익환(文益煥).서경원(徐敬元).임수경(林秀卿)밀입북(89.3.26,88.8.19,89.6.30)=재야인사.국회의원.운동권학생등이 정부의 허락을 받지않고 잇따라 북한을 방문,커다란파문을 일으키고 공안정국이 형성됐다.
◇서울올림픽(88.9.17~10.2)=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 사상 최대인 1백60개 국제올림픽위원회(IOC)회원국 1만3천6백26명의 선수단이 참가,금메달 2백37개를 놓고 16일동안 각축을 벌였다.
◇전교조(全敎組)파동(89.5.28)=일부 초.중.고교사들이전국적인 규모의 노조를 결성,체제옹호 교육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자 정부는 가입교사 1천5백여명을 무더기로 해직했다.
◇5共청문회(89.12)=5공화국 통치기간중 발생한 광주민주항쟁.대통령 친인척 비행등 5共 비리를 청산하기 위해 국회에 설치된 특별위원회가 열려 全前대통령등이 증언했다.
◇지방의회의원 선거(91.6.20)=광역의회선거를 통해 전국15개 시.도에 지방의회가 구성되면서「풀뿌리」민주주의가 부분적으로 실시되게 됐다.
◇한소(韓蘇).한중(韓中)수교(90.10.1,92.8.
24)=舊 소련의 개방정책과 동유럽의 와해등으로 인한 국제적인 해빙분위기를 타고 소련.중국과 수교,오랜 적대관계를 해소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 합의서 채택(91.9.
24,12.13)=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남북화해.불가침.교류협력등 3개안건을 하나로 묶은 단일 합의서를 채택했다.
◇김영삼대통령 당선과 문민정부 출범(92.12.
18,93.2.25)=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 김영삼후보가 당선,취임함에 따라 5.16이후 30여년만에 문민정부가 들어서 각종 개혁정책이 잇따랐다.
◇금융실명제 실시(93.8.12)=정경유착.투기등「얼굴없는 검은 돈」의 유통을 근절하고 분배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은행.금융거래때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밝혀야 하는 금융혁명이 실시됐다. ◇김일성 사망(94.7.8)=민족상잔의 책임자였고 49년동안 북한을 지배해온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金正日)체제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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