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칼럼

생체시계 자연시계 사회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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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생체시계에는 철새의 이동, 동물의 동면과 털색의 변화, 나무의 단풍, 물고기의 산란 등 1년을 주기로 하는 느린 생체시계가 있는 반면, 하루보다 짧은 주기를 갖는 빠른 생체시계도 있다. 수면의 깊이는 보통 90분을 주기로 변하고, 성장호르몬 분비와 좌우 뇌의 활성도비는 각각 3시간 및 4시간 주기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루 주기의 생체시계가 일상생활에서 제일 쉽게 관측된다. 1751년에는 피는 시간이 다른 다양한 꽃을 이용해 꽃시계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생명체의 하루 주기는 보통 22시간에서 26시간 사이로, 사람의 하루 생체 주기는 25시간으로 알려져 있다. 즉 빛이 없는 곳에서는 우리 몸에 내장된 시간추적시스템이 수면, 호르몬 분비, 행동 등 갖가지 신체 기능을 25시간 주기로 조절한다. 그런데 자연시계는 24시간 주기로 낮과 밤이 바뀌고, 밤에는 뇌에서 멜라토닌 호르몬이 방출돼 신체 기능을 조절한다. 즉 시간 차이가 적으므로 생체시계가 자연시계에 맞춰 24시간으로 동기화된다. 비행기 여행을 하면 생체시계와 자연시계의 시차가 커져 생체시계의 동기화가 어렵게 되며 밤낮이 바뀌는 시차증이 생긴다. 이는 특히 동쪽으로 여행할 때 더 크게 나타난다. 자기 전에 멜라토닌을 먹으면 이를 완화할 수 있다. 주로 파란색 빛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므로, 자기 전 몇 시간 동안 파란빛을 차단하는 안경을 쓰고 생활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멜라토닌은 다양한 신체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하루 생체시계가 무너지면 불면증·우울증·신경기능장애·심장병·암 등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전등을 켜고 야근을 할 경우 멜라토닌 수치가 떨어져서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잠자는 사이에 잠시라도 밝은 빛을 쪼이면 멜라토닌 분비가 많이 줄어든다는 보고도 있어, 침실 전등을 어둡게 하기를 권하기도 한다.

 많은 생명체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사회시계는 각각의 생체시계에 비해 매우 긴 주기를 갖게 되고, 보통 3개월에서 수십 년에 이른다. 사회시계의 주기가 너무 길어 자연시계로 동기화가 불가능하게 되면 제도적으로 동기 신호를 만들게 된다. 민주사회에서는 4년이나 5년을 주기로 선거를 통해 동기화한다. 즉 선거가 멜라토닌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도 민주체제는 수십 년간 재임했던 왕권 사회보다 훨씬 진화된 정치 제도다.

 사회시계 중에서도 교육시계는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유아교육부터 대학까지만 해도 근 20년 가깝게 걸리기 때문이다. 올해 대입 수능에서 정답이 2개가 나와 혼란을 줬다. 4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중학교 입시가 현재의 대학 입시와 유사하게 전국적인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했는데, 1964년 말에 무즙 파동이 있었다. 녹말을 당분으로 만드는 물질을 고르는 문제에서 정답으로 발표된 디아스타제 이외에 무즙도 답이 될 수 있어서, 입학식이 끝난 뒤 추가로 입학시켰다. 당시 학부모들은 엿을 만드는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하고 법원에 고소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 유행한 말이 “엿 먹어라!”였다. 43년 주기의 교육시계에서 향상된 점도 있는 것이다. 내년부터 5년 주기의 정치시계가 다시 시작된다. 그동안 정치도 더욱 좋아졌기를 기대한다.

이수영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