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홀릭(walkholic) 릴레이 인터뷰 (2)

중앙일보

입력

국민응원단 황종구 씨와 함평 길을 걷다.

WH 안녕하세요. 릴레이 인터뷰 첫 주자인 윤인희 씨께서 ‘국민응원 도보인’ 황종구 씨를 추천했습니다. ‘국민응원 도보인’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 국민을 응원한다는 뜻이지요. 별 거 있습니까. 기자양반, 그거 물으러 서울에서 함평까지 오셨소? 난 또 같이 걷는 줄 알고 마중까지 나왔는데?

WH 국민을 응원하며 걸으신다는데 워크홀릭 기자가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요. 도보 마니아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함께 걷는 것이 저희들 업인데요.(웃음) 당연히 같이 걸으면서 인터뷰합니다. 우선 남다른 걷기 철학이 있으신 것 아닌가요? 이렇게 전국을 직접 두 발로 밟고 다니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인데요.
철학은 무슨…!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나는 본래 문구류 유통사업을 했는데 지금은 잉크 토너 수거 하는 사업을 하고 있고요. 국민을 응원하는 걷기운동이라고 하니까 뭐 거창하게 들리는 모양인데 그런 거 정치인만 하라는 법 있습니까? 지금 다들 힘들고 혼란한 세상에서 살고 있잖아요. 이런 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 고민을 좀 했지요. 사람들이 쉽게 나서지 않는 일, 그렇지만 누군가 해내면 분명 크게 힘이 될만한 일이 뭘까 하다가 ‘걷기 응원’을 떠올렸어요. 내가 12년 전에 걷기를 통해서 당뇨를 치료했는데 이게 걸어보니까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둘째고, 뭣보다 정신이 개운하더군요. 앞만 바라보며 아등바등 살다가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좀 더 느리게 관조하며 살아도 되는데…. 우린 무엇을 위해 몸이 병들고 사회가 각박해지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는 걸까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몸소 나서서 걷기의 행복과 느림의 미학을 전파하고 있어요.

WH 홀로 고요히 걸으시는데 세상 사람들이 황 선생님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원래는 훌륭한 파트너가 있었어요. 십 년 전부터 함께 활동해온 회원들이 꽤 됩니다. ‘국민응원단’이라는 모임이 있거든요. 그런데 다들 생활이 있다보니 스케줄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렇게 각자 개인적으로 걷기 시작했죠. 남들이 봤을 땐 고독하고 지루해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기자님도 같이 걸어보면 알겠지만 이게 심심할 세가 없어요. 게다가 도리어 나를 응원하는 문자들도 숱하게 와요. ‘국민응원단’ 회원들도 격려 문자를 보내고, 내 친구들, 아들딸 친구들….(웃음) 내가 응원행사 때문에 이렇게 도보여행을 나서면 자기들도 알 수 없는 힘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게 서로서로 국민응원이지, 뭐 별 거 있어요?(웃음) 또 온라인에서 활동하시는 여러 도보인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좀 타기도 했죠. 도보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는데, 국민응원단과 제가 왜 이런 캠페인에 나섰는지 얘기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을 해줘요. 우리 회원들이 방방곳곳에서 걷기 복음을 퍼뜨리고 있으니 ‘더 느리게 사는 법’에 귀를 기울인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행복하고 넉넉한 사회가 될 거라 믿습니다. 이대로 가다보면 국민 모두가 미소 짓는 날이 올 수 있을지 혹시 알아요?(웃음)

WH 이번 도보응원의 코스와 하루 이동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우리 국민응원단의 목적은 행복 씨앗을 퍼뜨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루트를 다양하게 짭니다. 현재 다른 팀원들은 해남에서 걸어오고 있고 저는 방향을 좀 달리 해서 목포에서부터 시작했어요. 하루에 60km 정도 걸어서 보름 안에 김포로 입성할 계획입니다. 겨울철엔 기상 시간이 새벽 4시에요. 어두워지면 도로변이 위험하니까 안전을 위해 일찍 움직여 걷고 해가 떨어지면 숙소를 바로 잡습니다. 찜질방에서 식사와 취침 인터넷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으니 아주 편리해요. 그날그날 걸은 코스와 사진 단상 등을 정리해서 홈페이지에 올려두면 지인들이 곧바로 확인하고 댓글을 답니다. 얼마 전에는 딸아이가 수능을 보는 날이었는데 제가 길 위에 있었어요. 여느 아이들 같으면 서운했을지 모르겠지만 딸아이는 아버지가 길 위에서 세상 모든 수험생들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했을 겁니다. 저는 그때 시험을 치는 딸에게 점수를 더 많이 얻기 위해 경쟁하지 말고 더욱 따뜻한 마음으로 둥글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편지를 썼어요. 수능 점수가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그 마음이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네요.
아내도 처음에는 친척들과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뜯어말리더니 이제는 남편이 멋있다고 합니다. 해병대 출신 친구들이 그러는데 제 나이에 이 정도 체력이면 대단히 건강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하루 60km 이상 걸어도 전혀 피곤한 걸 모르겠거든요. 가끔 과천에서 신사동까지 걸어 다니는데 두 시간정도 소요됩니다. 이 정도면 괜찮죠? 체력과 정신력이 받쳐주는 한, 풀뿌리들의 대한민국 응원은 쭉 이어질 것입니다.

WH 이 응원 길에 함께 오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구든지 시간 나는 대로 배낭 꾸려서 걸으면 되죠.(웃음) 걷기여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게 해줍니다. 어제는 길에서 휴가 나온 군인들을 만났는데 옛 생각이 나서 한참 담소를 나눴어요. 군복 입은 장정들이 간식보따리를 애인 대하듯 애지중지 다루는 폼이 어찌나 우습고도 눈물겨운지…. 뭐가 들었냐고 물으니 빵과 통닭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때는 담배였는데 세월이 바뀌니까 그런 것도 다르더군요.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어도 군대생활 힘든 것은 매한가지인 모양인지 복귀하기 싫어하는 눈치들을 보니 내 옛 모습 같기도 하고 또 내 자식 같기도 하고. 그러니 그냥 넘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이 아저씨가 맛있는 소주를 사주며 다독여주었지요. 여행 내내 이어지는 이런 작은 만남들이 훗날에는 가장 기억에 남는답니다.

WH 아주 멋진 여행을 즐기고 계시네요. 선생님처럼 멋진 도보인이 있다면 한 분 소개해주시겠어요?
기자님께서 꼭 알아야 할 사람 한 분 소개해 드릴 테니 한 번 같이 걸어 봐요. 꼬맹이들과 소풍 다니는 풍경이 아주 재밌을 겁니다.

WH 네, 기대하겠습니다. 끝으로 걷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걷기란, 자연이 품고 있는 따뜻한 기운을 몸에 배게 하는 작업입니다. 자신의 두 발로 직접 걸어봐야만 느낄 수 있는 이 따스한 감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 퍼지길 저는 열심히 기도할겁니다.

객원기자 설은영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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