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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토는 이슬람 첫 여성총리 … 민주화운동 이끌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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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7일 암살당한 베나지르 부토는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총리다. 1947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신생 독립국가를 이룬 파키스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부토는 53년 6월 파키스탄 남부 항구도시 카라치에서 정치가 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딸로 태어났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비교정치학을 전공했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학.경제학을 전공했다. 재학 중 아시아 여성 최초로 옥스퍼드대 학생회장이 돼 지도력을 보여줬다. 학업을 마친 그는 파키스탄으로 돌아왔지만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부친이 육군참모총장인 무함마드 지아 울하크의 군사 쿠데타로 실각하고 79년 처형되는 가혹한 현실을 맞았다.

이에 부토는 정치에 뛰어들어 부친이 창당한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중앙위원이 되어 반정부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81년 체포돼 약 3년간 옥고를 겪은 그는 84년 유럽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망명지에서도 PPP를 이끄는 한편, 야당연합체인 민주주의회복운동(MRD)을 앞세워 계엄령 철폐와 군부 독재자 지아 울하크의 사임을 촉구하는 운동을 폈다. 지아 울하크가 계엄령을 해제하자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86년 4월 귀국, 전국을 돌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88년 8월 지아 울하크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뒤 열린 11월 선거에서 PPP가 최다 의석을 획득했다. 이에 부토는 12월 35세의 나이로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올랐다.

취임 뒤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민주화 개혁을 시도했으나 군부와 야당의 견제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게다가 정권의 부패 스캔들로 91년 총선에서 패배, 총리에서 물러났다. 92년 재기를 노리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 93년 10월 재집권했으나 이번에도 대통령인 파루크 아메드 레가리의 부패 스캔들로 3년 만에 다시 하차했다.

그 뒤 최대 야당인 PPP를 이끌며 정계 복귀를 노렸으나 99년 군부정권인 무샤라프 정권이 출범하자 자발적인 망명을 택했다. 망명 뒤에도 불법 자금 세탁, 전투기 구매 비리 등 그의 부패상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스위스. 폴란드.프랑스.이란.두바이 등에서 계속 쏟아져 나왔고 결국 지난해 1월 인터폴의 '적색수배' 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10월 18일 8년 만에 고국으로 귀국했다. 부토는 귀국 전에 무샤라프 정권과 권력 분점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1월 총선이 끝나면 부토는 총리를 맡고, 무샤라프가 대통령을 맡는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무샤라프는 부토의 귀국을 묵인했다. 그는 귀국 시에도 자살 폭탄테러 공격을 받았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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