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인 판매 비중 50% 넘으면 시내 면세점 문 닫게 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앞으로 공항이 아닌 시내 면세점은 이용자 수와 매출액에서 외국인 비중이 절반을 넘지 못하면 문을 닫게 된다. 시내 면세점이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을 돕는다는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내국인 장사에 치중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는 “내국인의 해외 쇼핑이 늘어나는 등 역효과가 생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관세청은 시내 면세점의 최근 5년간 이용자 수와 매출액 면에서 모두 외국인 구성비가 50%를 넘어야 허가를 갱신해 주기로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종전에는 자격·시설 요건만 유지하면 허가가 자동으로 연장됐다.

또 서울 등지의 10개 면세점 전체 이용자 수와 매출액을 더해 전년도 외국인 비중이 모두 50% 이상이고, 신규 허가 예정 지역의 외국인 입국자 수가 30만 명 이상 늘어날 경우에만 새로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종전엔 외국인 관광객이 지역별로 30만 명 이상 늘기만 하면 허가를 내줬다. 개정안은 2013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시내 면세점의 내국인 이용객 비중이 70%를 넘는 등 원래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국정감사 등에서 자주 나와 외부 전문기관의 연구용역과 보세판매장심의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시내 면세점 10곳 모두 외국인 이용객 비율이 50%를 밑도는 실정이라 이 개정안이 확정되면 시내 면세점 업계의 영업 활동이 외국인 중심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시내 면세점은 내국인에 맞춘 상품 구성이나 할인권 제공 등 내국인 마케팅에 치중하는 데 비해 외국인 쇼핑객 유치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시내 면세점의 이용객 수는 2004년까지 외국인 비중이 컸지만 올해는 8월까지 내국인이 74%에 달했다. 매출도 올해 내국인 비중이 60%에 육박한다.

면세점 업계는 관세청의 방침이 탁상행정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원화 강세로 외국인 여행객이나 쇼핑객의 증가세가 둔해지고 구매력 있는 내국인 출국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관세청의 새 규정을 충족시키는 건 무리”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면세점 측은 “면세점 사업 확대 정책이 물 건너갔느냐”며 “시내 면세점이 위축되면 내국인의 해외 쇼핑이 늘어 외화 유출을 더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이용객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부 면세점은 “내국인 유치에 유독 열을 올리는 특정 업체들 때문에 우리까지 강도 높은 규제를 받게 됐다”며 볼멘소리다.

김창규·임미진 기자

◆시내 면세점=서울 6곳(동화·호텔롯데·호텔신라·롯데월드·워커힐·AK코엑스점)과 부산 2곳(호텔롯데 부산·파라다이스글로벌 부산점), 제주 2곳(호텔롯데 제주·호텔신라 신제주) 등 10곳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