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는 장관회의 참석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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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9시 재정경제부 7층 회의실. 취임 후 처음 경제장관 간담회를 주재한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자리에 앉자마자 "앞으로 한국은행 총재는 참석하지 마라"고 말했다. 한은이 주관하는 통화정책의 중립성과 독자성을 대외적으로 보장해 줘야 하는데 한은 총재가 정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통화정책 조율은 별도 채널로 하도록 하자고 했다.

첫 회의부터 바짝 '군기(?)'를 잡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장관들에게 "이견이 있으면 (회의장 내에서) 얼굴을 붉혀도 좋고 대들어도 좋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끝나야지 밖으로 얘기가 나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취임 10일을 맞은 李부총리가 전임자들과는 다른 색깔로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날 기자 브리핑에서 李부총리는 스스로 앞으로 할 일을 정리했다. "신용카드 문제부터 해결한다. 신용불량자 문제도 해결할 것이다. 일자리 대책을 틀림없이 차근차근 해 나갈 것이다. 금융이나 기업 부문이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재정 집행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경부 관리들에겐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며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일하면 좋은 정책이 안 나온다"고 했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중요한 사안이나 제대로 챙기라는 얘기다.

정책에 대해서는 자신의 입장이 분명한 것은 말하고 아니면 아예 입을 닫았다.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 "시간을 더 달라. 시간을 주면 알아듣기 쉽게 명확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말을 자제하는 것은 섣불리 말했다간 잘못된 메시지와 인상을 국민과 시장에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금리에 대해선 일절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환율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라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이대로 가면 5%대 성장도 못할 것'이란 발언에 대해 "(정책을) 이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5% 성장해서는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친(親)기업적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나는 '친경제'지 '친기업'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정책 혼선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LG카드 문제 등에 대해 "불완전하지만 기존 정책을 그대로 끌고 가겠다"고 했다. 지금 바꾸면 더 혼란스러워 지기 때문이란 이유다. 토론은 하되 결정은 신속하게 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1년, 2년씩 무한정 토론을 끌고 갈 수 없다. 토론에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 내에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2000년 '경제팀에서 불협화음이 난다'는 비판 속에 8개월 만에 재경부 장관직을 그만둔 기억도 입조심 당부의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李부총리는 "한달쯤 지나면 (정책의) 기본 방향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답답해도 참아 달라"고 했다.

김영훈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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