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서평>"한국근대경제사연구" 김경태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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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올 한해 한국사학계의 최대 수확은 1894년「갑오농민전쟁」에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수 있다.역사학자들이 1백년전의 농민전쟁 연구에 몰두하였던 반면 정부와 사회 일각에서는 본격적으로 전개될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대 비하기 위해 「국가경쟁력」강화를 시대적 과제로 제시하였다.
1백여년전 한국근대사의 전개과정을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국제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1876년조선은 서구 자본주의 열강의 요구를 등에 업은 일본의 개방 압력에 굴복해 문호를 개방한 바 있다.
그로 인해 조선은 세계 자본주의 시장체제에 종속적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과 봉건 지배층의 부패에 의한 내외적 모순이 얽히고 설켜 전국적인 농민항쟁을 불어왔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에 즈음해 쌀시장 개방을 필두로한 정부의 농업 개방화 정책에 대해 국민 사이에서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최근,바로 한 세기전 우리사회가 자본주의 열강의개방 압력에 굴복함으로써 겪었던 질곡과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민중들의 모습을 천착한 연구서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故 노주(蘆洲)김경태(金敬泰)교수의 『한국근대경제사연구-개항기의 미곡무역(米穀貿易).방곡(防穀).상권(商權)문제』(창작과 비평사刊)가 그것이다.
이 책은 故 金교수가 지난 70년 일본 도쿄(東京)대학에서 「근대조선 대일관계사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이래 발표해왔던 논문들 가운데 개항기 경제사관련 논문을 동료와 후학들이 모아 간행한 것이다.『한국근대경제사연구』는 2부로 나눠져있다.제1부 「미곡(米穀)무역과 방곡(防穀)문제」는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조인된 강압된 불평등조약 체제와 그 체제아래서 이뤄졌던 미곡무역의 실태,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했던 방곡령사건의 구조.내용.성격등을 다뤘고,제2 부 「상권(商權)회복의 문제」에서는 이러한 억압체제를 극복하려는 관세권 회복노력과 상권자주성 회복운동등 조선정부와 민중의 주체적 움직임을 추적했다.
저자는 불평등조약의 구체적인 사례로 「조일통상장정」중 쌀관련조항의 불평등성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뒤 외래 상인에 의해 쌀이대량으로 유출됨으로써 국내 쌀값이 폭등했고,그로 인해 당시 우리나라 사회.경제적 기반이 매우 심각하게 파괴 돼 갔음을 밝혀냈다. 또한 저자는 오늘날과 달리 사료 수집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70년대 초 『통상휘찬(通常彙纂)』『일본외교문서(日本外交文書)』등 일본 정부 공식문서,개항 직후 주한공사로 내한했던 하나부사(花房義質)가 남긴 『하나부사문서』,일본 국내 신문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함으로써 국내 학계의 연구 시야를 확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기존 연구가 외압의 시기적 변화를 간과하고 있었던 점을 지적함으로써 일본을 비롯한 외부 압력이 각시기 우리 사회의 자주적인 발전과 민중들 의 성장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저해하였는가라는 문제를 실증적이고 구조적으로 밝혔다.
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개항기 연구는 특정 측면에만 치우진 감이 있었다.대외관계사적 시각에서는 열강과 조선과의 외교정책의변화 과정만을 주로 천착하였고, 사상사 및 사회경제사적 측면에서는 민족운동 주체세력의 형성 발전 과정을 추적 하는데 치중하였다. 반면에 故 金교수가 이 책에서 보여준 연구태도는 올해 역사학계의 최대 관심사였던 「갑오농민전쟁」의 사회경제적 배경을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자 및 일반인에게도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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