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의 과학과 문학사이] '이카로스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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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전투기 조종사이자, 항공 전문가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30여년 전 처음 비행기를 타신 그 분의 노모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얘야, 제발 비행기 탈 땐 낮은 데서 천천히 몰고 다니렴."

아마 어머님께서는 비행 사고의 대부분이 비행기가 이.착륙하는-낮고, 천천히 움직이는-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모르셨을 것이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실현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가 하늘을 날다 떨어진 뒤 수천년이 지난 20세기에 와서야 인간은 겨우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다. 시작이 어렵다고 했던가. 1903년 12월 17일 오빌과 윌버 라이트 두 형제가 하늘을 난 후 급속도로 발전한 비행의 역사는 이제 우주 저편까지 인간의 활동 범위를 넓혀주고 있다.

이렇게 빠른 비행기의 발전 속도는 전쟁에 힙입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세기를 뒤흔들었던 세계 대전은 비행기를 비롯한 미사일.로켓 등 하늘을 나는 물체가 군사적으로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줌을 세계 각국에 인식시켰고, 항공우주산업은 군수산업의 비호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더 높이, 더 멀리, 더 빠르게 발전하던 비행기는 근래에 와서 한 가지 활동 분야를 첨가했는데, 바로 초소형 비행체(micro air vehicle)가 그것이다.

초소형 비행체는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아주 작은 비행체에 대한 연구로 1997년 미국 DARP(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작은 것을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연구할까? 이것의 가능성에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인 쪽은 역시 군수업체였다. 초소형 비행체는 주로 전투 지역에서 적의 눈을 피해 정탐과 도청.감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 군사적 활용도가 매우 높다.

이들은 작은 크기와 민첩한 움직임을 실현시키기 위해 새나 곤충을 본떠 만들어지고 있다. 공중에서 1백80도 회전해 천장에 달라붙거나 한곳에 고정되어 떠 있는 물체를 만드는데, 파리나 벌새보다 더 좋은 역할 모델은 없으니까. 여담이지만 요즘은 이렇게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의 구조나 움직임을 연구해 우리 실생활에 결합하는 생물모방(biomimetics) 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나는 것을 한번이라도 동경한 사람이라면, 오빌 라이트가 쓴 '우리는 어떻게 비행기를 만들었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직접 비행기를 만들고 탔던 만큼 비행기를 하늘에 띄우기 위해 설계를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생생하게 들어 있으니까.

거기에 그들이 직접 찍은 빛 바랜 흑백 사진들은 기분좋은 덤이다.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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