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탁신 재집권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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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태국에서 지난해 9월 군부 쿠데타로 탁신 친나왓(58) 전 총리가 축출된 뒤 처음으로 23일 총선이 실시됐다. 480석의 의석을 놓고 39개 정당에서 5000여 명의 후보가 출마한 이번 총선에선 탁신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결성한 '국민의 힘'당(PPP)의 승리가 확실시된다. 그러나 의석의 과반수에는 약간 못 미칠 전망이어서 향후 연정 구성을 놓고 2위 정당인 민주당과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개표가 약 80% 진행된 이날 오후 태국 선관위 측은 '국민의 힘'당이 230석을, 민주당이 161석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힘'당 측은 집권할 경우 현재 망명 중인 탁신 전 총리의 귀국을 추진, 그를 정계에 복귀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과반수 득표를 하지 못할 경우, 군부의 입김으로 민주당 중심의 연정이 구성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군부의 실질적 지배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변함없는 탁신의 인기=군부가 '부패한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 독재자'라는 낙인을 찍어 권좌에서 내몰았음에도 불구하고 탁신에 대한 태국 국민의 지지는 여전하다. 그는 저금리 융자, 무료에 가까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정치에 별 관심이 없던 농민층을 최대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였다. 이에 힘입어 2001년과 2005년 총선에서 그가 창당했던 '타이 락 타이(TRT)'당이 연이어 압승을 거뒀다. '타이 락 타이'당이 강제 해체된 뒤 새로 들어선 '국민의 힘'당은 이번 총선 유세 기간 중 전국 농촌을 돌며 탁신이 출연한 홍보 비디오를 상영하고, 그의 농민 지원 정책을 이어받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표심을 사로잡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실정도 탁신에 대한 향수를 일깨웠다. 서툰 경제 정책 탓에 2006년 초 이래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절반으로 급감했으며, 탁신 집권 시 6.4%(2003년 기준)에 이르렀던 경제성장률도 올해는 4%로 둔화했다.

◆탁신, 제2의 페론 될까=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인터넷판은 22일 탁신을 '태국의 후안 페론'이라 불렀다. 1946~55년 집권했던 아르헨티나의 페론 대통령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뒤 해외 추방됐으나 73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 잡지는 "페론은 복귀하는 데 18년이 걸렸지만 탁신은 18개월 내에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민의 힘'당 유밤룽 부총재는 23일 연설 중 "탁신 전 총리가 내년 2월 14일 귀국하겠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탁신의 복귀 구상이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이 자신들에 불리한 총선 결과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총선 이후 태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탁신 친나왓=1994년 정계에 입문한 뒤 98년 '타이 락 타이' 당을 창설했고, 2001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총리에 취임했다. 경제.보건.교육.마약 정책 등이 성과를 올리며 태국 역사상 임기를 마친 첫 총리가 됐고, 2005년 재선됐다. 2006년 9월 군부의 무혈 쿠데타로 실각한 그는 현재 런던에 머물고 있다. 영국 명문 축구클럽 맨체스터시티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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