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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은행제, 지방대 위기 부추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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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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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에서 수많은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이 학생을 모집하는 것을 보았다. 모집 규모도 한 과정당 수백명 또는 1천명 이상으로 일반 대학은 생각도 못할 정도다. 수도권 지역의 학점은행제 학교와 사이버 대학에서 모집하는 정원을 모두 합하면 지방대학의 학생 부족 현상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인원일 것이다. 동시에 정원을 채우지 못해 고생하고 있는 지방대학들의 학생 추가 모집 광고도 보인다. 서울에 있는 학점은행제 교육기관들이나 사이버 대학들이 지방대학의 피폐를 가져오게 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학점은행제도는 시간이 적절치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평생교육 개념에 따라 대학과정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봉사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향을 보면 학점은행제도가 어려운 이웃을 위한 것보다는 상업주의형 대학과정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학점은행제도 학교들은 한결같이 일반 대학과 동등한 학위를 수여한다거나, 아주 짧은 시간 내에(2~3년) 학위를 마칠 수 있다거나, 정규대학보다 아주 저렴한 비용(4년제 대학의 절반 정도)으로 대학을 마칠 수 있다거나, 일정 수준의 학점을 한 대학에서 이수하면 해당 대학교 총장 명의의 졸업장이 나온다는 등등 여러 면에서 웬만한 정규대학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광고하고 있다.

사실 이전에는 젊은이들이 서울로 간다고 해도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자리를 찾아서 가는 경향이 있어 지방에 어느 정도 젊은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 재학생들의 수도권 지역 대학으로의 편입,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조건 수도권 지역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현상 등이 심화하면서 지방 젊은이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고, 지방도시는 활력을 잃은 쓸쓸한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지방대학은 신입생 자원의 부족뿐 아니라 재학 중인 학생들조차 지키기 힘든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꼭 학점은행제 학교가 이러한 문제를 만든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과 맞물려 학점은행제 학교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그냥 방치한다면 학점은행제 학교나 사이버 대학이 가지고 있는 사회 변화에 대한 높은 적응능력을 볼 때 우리 지방대학이나 지방사회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커다란 태풍으로 돌변할까 걱정된다. 이 제도는 또 정규 대학과정이든, 비정규 대학과정이든 대학과정의 질 저하를 야기하는 문제와도 어느 정도 관련돼 있다. 학점은행제 교육기관들은 좋은 교수진을 보유한 곳도 있으나 대체로 정규대학에 비해 좋은 교수진을 보유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학점은행제 학교의 상업주의 때문에 기존 대학들, 특히 지방대학들도 생존을 위해 교육상업주의에 더 깊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최세일 호남대 컴퓨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