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패자들의 아름다운 뒷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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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를 인정한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하고 있다. 존 케리 상원의원의 독주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18일엔 '풍운아' 하워드 딘 전 주지사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그에 앞서 딕 게파트 하원의원.조 리버먼 상원의원.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사령관은 이미 경선 무대를 떠났다.

승자에게 쏟아지는 환호와 갈채가 화려할수록 패자가 느끼는 고통과 쓰라림은 큰 법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는 패배하고 떠나는 정치인의 모습이 한국처럼 추하고 볼썽사납지는 않았다.

조 리버먼 의원은 2000년 대선 때 앨 고어 후보의 러닝메이트였던 거물이다. 그는 지난 3일 기대하던 델라웨어주 예비선거에서도 형편없는 결과가 나오자 사퇴했다. 리버먼은 "나를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남은 후보들 모두 선전하길 빈다"고 시종 웃으며 말했다.

당내 경선만 그러는 게 아니다. 지난해 10월 초 리콜(국민소환)을 당해 공화당의 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자리를 물려준 민주당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는 퇴임 연설 때 부인이 눈물짓자 "우는 건 이따 집에 가서 우리끼리 하고, 우선 신임 당선자를 축하하자"면서 "최선을 다해 슈워제네거 주지사를 돕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에선 자신의 패배를 수용하지 않는 성난 얼굴의 정치인이나, 승리자에 대해 욕설을 퍼붓고 악을 써대는 '아줌마 부대'를 보기 어렵다.

좋은 모습으로 떠났으니 그 이후의 모습도 추하지 않다. 리버먼 의원은 사퇴하자마자 상원의 일상업무에 복귀했다. 게파트 의원과 클라크 전 사령관은 선두주자인 케리 의원의 지지운동을 하고 있다.

지고난 뒤, 권력에서 떠난 뒤에는 너나없이 형편없이 망가지고 초라해져 버리는 한국의 정치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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