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 암거래' 말레이시아로 불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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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제 암시장을 통한 핵무기 기술 유출 사건의 불똥이 말레이시아로 튀었다. 현직 총리의 외아들이 연루됐다는 설까지 겹쳐 파문이 확대되면서 미국과 말레이시아 정부 간의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미국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방대학 연설에서 말레이시아를 특정해 핵기술 암거래에 연계돼 있다고 폭로했다. 파키스탄의 칸 박사로부터 핵기술을 넘겨받은 리비아가 원심분리장치에 말레이시아제 부품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를 제조한 회사로 지목된 스코미 정밀은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시아 총리의 외아들인 카말루딘 압둘라가 소유한 기업의 계열사다. 스코미 정밀은 2002년 말부터 지난해 8월까지 모두 네 차례 아랍에미리트를 경유해 부품을 리비아에 수출했다고 미국은 주장했다.

또 이 회사의 이사인 스리랑카 출신의 부하리 사예드 타히르란 인물이 칸 박사의 자금관리인으로 돈세탁을 전담했다고 미국은 지목했다. 미국 언론은 타히르가 총리 아들 카말루딘과 여러 차례 만난 사실도 보도했다.

말레이시아는 즉각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항의했다.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미국 정보기관의 통보를 받고 타히르에 대해 조사했으나 위법 사실이 없어 체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스코미 정밀 측은 "아랍에미리트의 회사를 통해 기계 부품을 수출한 건 사실이나 용도는 전혀 몰랐다"면서 "핵무기 부품인 줄 알았다면 회사 이름이 버젓이 쓰인 상자에 담아 수출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바다위 총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명백한 증거를 대라"고 맞받아쳤다. 18일엔 말레이시아 주재 로버트 폴러드 대리대사를 외무부로 소환해 공식 항의했다.

하지만 미국은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다. 핵 포기를 선언한 리비아의 핵시설 사찰과 수출 부품을 싣고 리비아로 가던 선박에 대한 현장 검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19일 말레이시아의 수출통제 시스템이 국제 표준에 부합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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