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首都 중무장 시민들 죽음각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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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 오세티아의 블라디카프카스 공항에서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 남짓 걸렸다.
그로즈니까지 가는 길목마다엔 철조망이 쳐있고 설복(雪服)을 입은 군인들이 중무장한 채 여기저기 잠복해 있었다.
러시아 군인들은 BTP 장갑차와 탱크등을 동원해 수도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한 채 엄중한 감시망을 펴고 있었다.
그로즈니市 초입에 설치된 체첸인들의 검문검색도 엄중하긴 마찬가지였다.특히 코지레프 러시아 외무장관의『수일안에 체첸 사태를해결하겠다』는 발언이 전해진 후 체첸인들의 긴장감과 공포는 극에 달한 느낌이었다.
그로즈니市 초입의 세르나보츠카야 마을.
외각을 지키던 자원병들이 대뜸 기자가 탄 차를 세우더니 무조건 총을 들이대며 검문검색을 했다.
『당신들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기자』라해도 막무가내였다. 잠시후 진짜 취재기자임을 확인한 후 『미안하게 됐다』며 통과시켰다.
마을 주민들은 『어제(14일) 헬기소리를 듣고 길로 나온 4명이 그대로 헬기의 기총사격때문에 사망했다』며 증오와 공포심이뒤섞인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두울 무렵 도착한 그로즈니에는 개인화기로 무장한 체첸사람들이 넘쳐흘렀다.
AK기관총이나 휴대용 대전차포를 어깨에 멘 채 수류탄.포탄등을 바지춤에 달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91년 체첸에 주둔하던 러시아 군이 돌아가면서 남겨놓은 무기가 마구잡이로 흘러나온다고 했다.
체첸 정부는 그로즈니를 사수한다는 명목으로 별다른 확인절차 없이 자원병에게 형식적인 문서만을 받은 다음 무기를 지급하고 있었다. 15일 밤 그로즈니 의회건물 앞에선 집회가 열렸다.
모인 사람은 줄잡아 5백여명.
3차 평화협상이 결렬된 후 러시아군이 격렬한 공격을 퍼부은 직후여서 인지 참가자들이 무척이나 격앙돼 있었고 연사는 계속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었다.
어둠이 그로즈니를 완전히 뒤덮은 뒤 세리프라는 젊은 안내인과함께 스타로프라마 슬로브스키 마을로 갔다.
택시기사는 불도 켜지않고 운전하면서『러시아 군이 불켜진 차만보면 사격을 한다』고 했다.
기자가 도착한 곳은 시내에서 20여㎞쯤 떨어진 어둡고 침침한마을 뒤에 위치한 폐허같은 방공호였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들렸다.
가로 2m,세로 8m정도 크기의 방공호 2개에 1백50명 정도 되는 부녀자와 아이들이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널빤지를 깐 뒤그 위에 깐 얇은 담요에 바르게 앉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있다.
남자는 없었다.
모두 자진해서 나가 경계를 선다고 했다.
가까이 있는 러시아군의 포격때문에 밤낮없이 이런 생활을 한지2주일. 취사장비도 없이 먹을 것이라곤 물.빵뿐 이라고 한다.
그나마 물을 가지고 왔던 청년이 5분전 포격을 맞고 죽었다는소식이 전해진 뒤여서 기자가 들어갔을때 사람들은 흥분해 있었다. 이들은 『러시아군이 어제 저녁 갑자기 집에 포사격을 가했다.이 때문에 애가 다쳤다』며 러시아군의 횡포에 진저리를 쳤다.
타타르인 스베틀라나(53)는 국민학교에도 폭격을 해 15명이다쳤다고 덧붙였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15일 무력진압 최후통첩시한을 다시 17일까지 48시간 연장한 뒤 아직까지 러시아군은 그로즈니 시내로진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러시아의 국내문제로 취급하고,러시아군은 그로즈니의 턱밑에 탱크를 대기해 놓은 가운데 체첸인들은『러시아군이 들어오면 모두 죽음을 각오할 것』이라며 벼르고 있어 극적인 돌파구가 없는 한 피를 불러올 충돌은 멀지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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