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성순의 호젓한 이곳] 봄이 아직 먼 태백산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4면

겨울마다 하얀 설경이 눈부시게 빛나는 곳. 한때 호황을 누렸던 휴게소도 텅 빈 벌판에 방치되고, 찾는 이 발걸음도 뚝 끊겨 호젓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곳.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을 넘어 선자령으로, 막바지 겨울을 맞이하러 간다. 대관령과 선자령 일원은 워낙 높은 고지대여서 겨우내 내린 눈이 3월이 되도록 녹지 않고 줄곧 쌓이기만 한다. 그런 까닭에 2월 말이나 3월 초에 가면 오히려 깊은 눈 속에 푹 빠질 수 있다.

전방 고지같은 높은 산악지대 말고, 보통 사람들이 차 타고 갈 수 있는 곳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눈이 내리는 곳이 대관령 일원이다. 몇 해 전 널찍한 새 영동고속도로가 뚫린 뒤부터 잊혀져 가는 길이 됐지만 겨울철이면 으레 '폭설로 대관령 통행 두절'이란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대관령은 고갯마루 너머 강릉 쪽으로만 아흔아홉 굽이의 가파른 길이 똬리를 틀 뿐, 횡계 쪽에서 오를 때는 일직선이나 다름없는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그래서 차량 통행에 지장을 주는 일은 예상 외로 드물다. 호젓하게 겨울 정취를 만끽하면서 작품 사진을 기대할 만한 촬영지로 새로이 위상을 정립한 셈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오르면 더욱 환상적인 설경이 반긴다. 옛 영동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관령 기상대 방면 시멘트 길로 1.5㎞ 남짓 오르면 대관령 산신을 모신 국사성황당. 호랑이에게 업혀 간 처녀가 산신령과 혼인했다는 전설이 어린 곳으로 강릉 단오제 산신제가 열린다.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비탈을 2 ~ 3분 오르면 시멘트 길과 만나고, 왼쪽 길로 6분 남짓 더 나아가면 선자령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서 시멘트 길과 헤어져 왼쪽 오솔길로 접어들면 본격적으로 선자령 산행이 열린다. 눈밭을 헤칠 자신이 없다면 이쯤에서 눈앞에 펼쳐진 눈부신 설원을 바라다보기만 해도 후회하지 않을 선경이다. 1시간 30분 남짓 눈길을 더듬으면 해발 1천1백57m의 선자령. 산악인들에 의해 눈길이 다져져서(전문 용어로 러셀) 푹푹 빠지는 일 없이 오를 수 있다.

하늘에서 선녀들이 자식들까지 데리고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에 따라 선자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온갖 야생화가 피고 지면서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다가 겨울로 접어들면 새하얀 설원으로 변신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두터운 눈꽃을 방한복 삼아 입고 추위를 이긴다. '닥터 지바고'의 눈벌판이 절로 떠올려지고 어디선가 '라라의 테마'의 발랄라이카 음률이 은은히 울려퍼질 듯하다. 서쪽으로는 대관령 목장의 드넓은 목초지가 눈판으로 바뀐 채 파란 하늘 아래 누워 있고, 동쪽으로는 강릉 시내와 동해 바다의 수평선이 아른거린다.

내려오는 길에 양떼 목장에 들러도 좋다. 옛 대관령 상행선 휴게소에서 5백m 거리에 있는 양떼 목장의 넓이는 6만2천여평. 양 2백여마리가 오순도순 모여 산다.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 펼쳐진 '목장 길 따라' 쉬엄쉬엄 40분이면 색다른 운치에 젖어든다. 순백의 눈벌판과 나무마다 곱게 핀 눈꽃, 축사 주변 눈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떼들이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린다.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양 신바람이 난다. 사방 천지가 눈썰매장인 까닭이다. 눈썰매 따위는 굳이 필요 없다. 비료 부대 안에 짚을 넣고 언덕에서 미끄러지면 그만. 간만에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

신성순 여행작가

*** 여행 쪽지

▶ 드라이브 메모
횡계 나들목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요금소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3거리에서 우회전. 횡계(용평 리조트) 방면으로 1km 남짓 달리면 왼쪽으로 대관령 옛길이 보인다. 여기서 좌회전해 옛 영동고속도로를 5km 남짓 달리면 오른쪽에 옛 대관령 하행선 휴게소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 옛 영동고속도로 위에 걸린 고가도로를 넘으면 상행선 휴게소와 국사성황당, 양떼 목장 등으로 이어진다.

▶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로 가는 버스를 탄다. 횡계에서 옛 대관령으로 가는 버스는 없으므로 택시 이용.

▶ 숙식 정보
단체일 경우 미리 예약하면 양떼목장(033-335-1966)에서 묵을 수 있다. 용평 스키장과 횡계 일원에는 숙박업소가 많다. 횡계 일원 숙박업소가 만원일 경우에는 진부로 나가는 것도 한 방법. 횡계의 별미인 오징어불고기는 납작식당(033-335-5477)과 동양식당(033-335-5439), 황태 요리(찜·구이·해장국 등)는 송천회관(033-335-5942∼3)과 황태회관(033-335-5795)이 유명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