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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지역사회협약’ 실험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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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수년간 여러 지역에서 이해당사자 간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지역사회협약을 맺기 위한 시도들이 꾸준히 이뤄져 왔다. 지역사회협약이란 특정 지역사회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상호신뢰와 협력에 기반해 맺는 미래지향적 약속을 지칭한다. 필자는 울산 지역에서 이뤄진 두 가지 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사례는 울산 북구 음식물자원화시설을 둘러싼 지역사회협약이다. 2004년 북구청은 환경친화적인 음식물처리시설을 건립하고자 했고, 이를 혐오시설로 간주한 지역 주민들은 결사적으로 반대 운동을 벌였다. 다행스럽게도 양자는 시민배심원제도를 받아들여 그 판단 결과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13개 시민단체의 위촉으로 구성된 시민배심원들은 음식물자원화시설을 계획대로 추진하는 것에 동의함으로써 극적으로 사회 협약을 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음식물 자원화시설에서 악취가 심하게 나면서 갈등이 재발하게 됐다. 올해 들어 북구청은 울산발전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했고 용역 결과 악취는 시설 자체의 문제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폐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전문지식이 부족했던 시민배심원들의 아마추어적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둘째 사례는 울산 건설플랜트 산업의 파업 사태를 둘러싼 사회적 대화다. 2005년 플랜트 시설의 건설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용자들은 이를 거부했고, 76일에 걸친 파업 끝에 울산시와 시민단체가 나서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낸 사건이다.

이는 건설플랜트 노사 당사자뿐 아니라 상급 단체들을 모두 망라해 이뤄진 사회협약으로서 전국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2005년의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2006년과 2007년에도 울산 건설플랜트 산업에서는 동일한 양상의 파업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근로 조건 개선, 불법 하도급 금지 등의 사회적 합의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이뤄진 지역사회협약의 실험은 아직 미완성 상태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이러한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로 갈등 현황에 대한 이해당사자들과 시민단체의 올바른 판단을 돕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수용하는 의사결정상의 절차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사회적 협약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들 간에 신뢰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갈등조정법 등의 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사회적 합의가 아무런 규제 없이 파기된다면 오히려 상호불신만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지역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대화가 지닌 소중한 의의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지역사회협약이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방식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실패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교훈을 축적해 갈 필요가 있다.

조형제 울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