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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어린이 책] 비탄의 태안 앞바다 기쁨 가득할 그날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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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데이비드 벨아미 글, 질 도우 그림,
이일형 옮김, 초록개구리, 32쪽,
8500원, 초등 저학년

충남 태안 앞바다에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이 넘었다. 쪽빛 바다를 집어삼킨 시커먼 기름띠. 바닷가는 순식간에 죽음의 벌판으로 바뀌어버렸다. 기름을 뒤집어쓴 채 해변에 앉아있는 철새의 모습이 사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망가져버린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10년도 더 걸린다는데…. 인간의 실수가 빚은 대재앙 앞에서 망연자실한 심정이다.
 
영국의 환경운동가가 쓴 이 책은 유조선에서 쏟아진 석유로 엄청난 몸살을 앓는 바다 이야기를 담았다. 마치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를 보고 쓴 듯 사정이 너무나 비슷하다. 아이들과 함께 이번 사고의 심각성과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교재가 될 듯싶다. 연일 신문과 뉴스에 오르내리는 관련 기사와 함께 활용하기에도 맞춤이다.
 

사고 전 바다는 바다 생물들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터전이었다. 커다란 불가사리는 바닷말 사이에 숨어있고, 딱딱한 껍데기가 없는 소라게는 말랑말랑한 배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고둥 껍데기 속에 들어가 산다. 조개들은 느릿느릿 돌아다니고, 몸에서 질긴 실을 내보내 바위에 단단히 붙어있는 홍합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바닥 곳곳에는 게가 벗어놓은 낡은 껍데기가 떨어져 있다. 게는 자랄 때마다 낡은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바위 틈에 숨어 새 껍데기가 단단해지길 기다린다. 먹는 일도 중요하다. 성게는 대롱처럼 생긴 다리로 웅덩이 주위를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먹어치운다. 또 홍합과 굴은 두 개의 껍데기를 크게 벌려 물을 빨아들인 다음 아주 작은 먹이만 남기고 다시 뱉는다.
 
이런 질서와 조화는 거센 비바람이 불던 날 밤 깨지고 말았다. 거센 폭풍우에 유조선이 부서지고 만 것이다. 흘러나온 석유가 바닷가까지 밀려들었다. 바닷가는 온통 시커먼 석유로 뒤덮였다.
 
가시고기와 새우·게는 아가미에 석유가 묻어 숨을 쉬지 못하게 됐다. 새는 깃털에 석유가 달라붙는 바람에 깃털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날 수가 없다. 부리로 달라붙은 깃털을 다듬던 새는 석유를 먹고 결국 죽고 만다. 홍합과 삿갓조개는 숨이 막혀 죽고, 불가사리와 성게도 긴 대롱 같은 다리에 석유를 잔뜩 묻힌 채 죽었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책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자연의 복원력은 위대하다. 석유가 묻지 않은 바위 위로 재빨리 도망친 소라게와 껍데기를 꼭 닫고 있었던 삿갓조개 몇 마리는 살아남았다. 이들은 석유가 덜 묻은 바닷말을 먹고 생명을 이어갔다. 다행히 밀물이 들어올 때마다 석유는 조금씩 씻겨 나갔다. 세월이 지나자 바다는 다시 생명으로 채워졌다. 홍합이 새로 무리 지어 자라고 베도라치도 돌아온 것이다.
 
물론 현실은 그림책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엔 태안 앞바다도 다시 천천히 살아나는 기적을 보여주리라 희망이 생긴다. 기름 범벅이 된 바닷가 바위를 닦느라 구슬땀을 흘리는 자원봉사자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말이다.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다룬 또 다른 책으로는 『난지도가 살아났어요』(마루벌)도 권할 만하다. 난지도의 쓰레기산에 날아든 작은 씨앗. 바람에 날려온 조그만 씨앗이 초록색 싹을 틔웠다. 풀숲이 생기자 작은 풀씨를 먹고 사는 쥐·두더지가 살게 됐고, 이어 쥐·두더지를 먹고 사는 뱀·족제비·올빼미도 찾아왔다. 거기에다 난지도를 되살리려는 사람들의 노력까지. 죽어 가던 땅 난지도가 꿈틀꿈틀 살아나는 과정이 장엄하게 펼쳐졌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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