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 새로 태어나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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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나라당이 지리멸렬의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이회창씨와 당 대표인 최병렬씨가 각각 5백억원쯤이라고 주장했던 대선 불법자금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검찰이 밝혀낸 것만도 7백억원을 넘어섰다. 추가로 얼마가 더 나올지, 다른 비리는 어떤 것이 밝혀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다. 여기에 대선 직전 민주당.자민련 등에서 입당한 의원들에게 2억원가량씩 '이적료'를 준 사실까지 새로 드러났다. 마치 둑이 터지는 모양새다.

상황은 한나라당을 과연 공당(公黨)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일각에서 수사의 편파성 등에 대한 시비를 걸고 있으나 검찰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이 아닌 이상 한나라당의 행위 자체는 결코 면책될 수 없다.

당 내부 사정도 엉망이다. 리더십의 부재로 공천심사위가 현직 대표를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로도 공천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소장파 의원들은 이 같은 조치가 불충분하다며 최병렬 대표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당 중진들도 퇴진 압력에 가세하고 있다. 한마디로 갈 데까지 갔고, 더는 당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이 한나라당의 현주소다.

물론 특정 정당이 흥하거나 망하거나 우리가 알 바는 아니다. 내부에서 싸움이 벌어지건 말건 그들의 사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나라당이 조속히 다시 태어나 맡은 바 기능을 해 줄 것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법이 정당정치를 규정하고 있는 데다 이 같은 제도 속에서 한나라당은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 원내 제1당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난맥상은 건강한 여야관계에 장애 요인이 되고 이는 국정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 구성원들은 임시 전당대회 소집을 포함해 현재의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방안들을 진지하게 논의해 조속히 결론을 내려주기 바란다. 당의 환골탈태 방안에는 통렬한 자기 반성과 부패구조와의 확실한 절연, 기득권의 과감한 포기 등이 담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