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랠리’의 실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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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 18면

해마다 이맘때면 증시 분석가들이 즐겨 쓰는 말이 있다. 바로 ‘산타 랠리’다. 산타 랠리는 다음 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미리 주식을 사두는 사람이 많아져 연말에 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내년엔 경기나 기업실적이 좋아진다’는 식의 새로운 것 없는 논리가 매년 반복되는데도 12월이면 꼬박꼬박 모습을 드러낸다. 때로 ‘신년 랠리’로 이름을 바꾸기도 하는, 희망을 먹고사는 증시 재료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가정이 숨어 있다는 점에선 ‘미인대회 효과’를 노린 일종의 마케팅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는 산타 랠리를 얘기하는 사람이 자취를 감췄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증시는 ‘3무(無) 시장’이라 부를 만하다. 주도주와 주도세력, 무엇보다 자신감이 없는 시장이다. 우선 올 한 해 상승을 이끌었던 조선·기계·철강주가 지난달부터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연초에 비해 두세 배씩 올랐으니 잠시 쉬어가는 것인지, 장밋빛 전망에 과대평가된 몸값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주도세력도 자취를 감췄다. 펀드로 몰려드는 자금을 배경으로 거침없이 주식을 사들이던 기관이 뒷짐을 지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현금이 급한 외국인들은 계속 주식을 처분하기 바쁘다. 이러다 보니 투자자들의 자신감도 어느새 쪼그라들었다. 외국 걱정에 국내 걱정까지 추가된 탓이다.

미국 금융회사들이 내년까지 부동산 관련 손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국내 경기와 기업실적도 1분기에 둔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르지는 못해도 크게 내리지 않는 시장이 대견해 보이는 대목이다. 산타 랠리가 실종된 지금, 그나마 시장을 받쳐주는 건 방어주와 대기 매수세, 내성이라는 삼총사다. 주도주가 하락한 틈을 정보기술(IT)·자동차 등이 막아주고, 주가 하락에 맞춰 펀드에 맡기는 돈이 늘어나며, 석 달 이상 계속된 서브프라임 악재도 그 칼날이 점차 무뎌지고 있다.

당분간 시장은 이들 악재와 호재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박스권 안을 맴돌 것 같다. 내년 1월에 나올 미국 주요 기업들의 올 4분기 실적과 크리스마스 시즌 소비증가율을 눈으로 봐야만 미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력 대선 후보가 최근 ‘내년 주가 3000’을 얘기했지만, 정치적 수사를 그대로 믿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올해 산타는 증시에 들를 짬이 없을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그래도 마음의 여유는 잃지 말자. 따져 보면 올해 증시는 썩 괜찮은 수익률을 안겨줬다.

며칠 남지 않은 연말까지 시장에서 잠시 눈을 돌리고 금리와 부동산, 경기 등 큰 그림을 보면서 내년 포트폴리오를 구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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