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서평>박호성作 "평등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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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오늘날 평등의 이념은 위기를 맞고 있다.「실질적 불평등」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사회주의는 「자유 없는 평등」을 구가할 수 있었으나 생산성의 정체로 결국 붕괴하지 않을 수 없었던반면,전세계적 차원의 경쟁이 전면화되는 가운데서 도 자유로운 이윤추구를 기본원리로 하는 자본주의는 여전히 존립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평등의 이념은 과연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는가. 근대 이후 모든 정치철학적 과제는 자유와 평등 사이의 대립을 어떻게 풀 것이냐에 모아졌다.그렇기 때문에 「평등」은 현실의 분석과 미래의 전망을 담아 내는 구체적인 개념이 되었다.70년대 이래 우리 사회에서도 「평등」이 주요한 이론 적 관심사로 등장했음에도 불행하게도 그간 국내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거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이 책은 근대 이후 정치철학의 중심주제였던 「자유와 평등」에 관한 근원적 물음과 대결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의 평등의 실현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어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현실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이론서라 할 수 있 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유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마르크스주의가 표방하는 평등의 이상은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화되었는가를 살피면서 평등의 이념이 각각의 체제에서 결코 성공적으로 실현되지 못했다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대신 평등의 이념이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지만,그러나 필연적요구로 현실성도 지닌다는 의미에서 「현실적 이상주의」를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는 기본전제 위에서 소유권에 대한 평등권을 수용하려는 의도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등의 이념과 현실을 동시에 조망코자 하는 저자의 시도는 그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그러나 그 시도가 역설적으로 이념과 현실의 괴리와 모순을 뚜렷이 드러내 준다면 그것은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정치철학이 「자유와 평등의 동시적 확보」를 추구했음에도 현실은 언제나 「평등 없는 자유」가 아니면 「자유 없는평등」으로 귀결되었다.그렇다면 그것은 정치철학의 결함 때문인가아니면 불가피한 현실의 단순성 때문인가.그리고 이념은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을 짝사랑하는 시지프스에 불과한 것인가.
당위로서의 유토피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예언」으로서의 유토피아를 거부하는 저자의 「현실적 이상주의」가 사실상 이론의 현실에로의 투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비극이 아닐 수 없다.지금의 현실은 이론이 현실 로부터 일정한거리를 유지하면서 자기반성을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현실 속에서는 이론적 이상을 포기하는 실용주의를 강요하게 될 때 이 책의 이론적 성과와 별개로 현실은 매우 암담할 수밖에 없다.
「자유와 평등의 동시적 확보」라는 매우 타당한,그렇기 때문에상식적인 명제가 이 책의 출발점이자 결론이다.그러나 현실은 항상 그와 같은 타당한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책을 통해 우리의 현실에 일정한 함의(含意)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분석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이 과제도 이 책 속에 예비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충분히 인식되고 이에 대한 준비가 이뤄지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金 蒼 浩 〈학술전문기자.哲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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