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는 ‘순한 배드 보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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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여자 프로농구 신한은행의 전주원<右>이 13일 안산 와동체육관에서 열린 ‘우리 V카드 정규 리그’ 우리은행과의 경기에서 수비벽을 뚫고 골밑슛을 하고 있다. 올시즌팀 최다 어시스트 신기록(29개)을 세운 신한은행이 86-69로 이겨 시즌 전적 12승2패로 단독 선두를 이어갔다. [안산=뉴시스]

스포츠에서 ‘배드 보이스(Bad Boys)’는 악동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1989년과 90년 연속으로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을 차지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대표적이다. 걸쭉한 욕을 달고 살며, 난폭한 수비를 일삼고, 심판 판정에 항의해 공을 집어던지는 악동들이었지만 승리에 대한 열망, 결코 대충 하지 않는 수비, 개인 기록보다 팀을 앞세우는 정신이 그 속에 깔려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한국 프로농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안양 KT&G도 배드 보이스다. 그러나 욕설과 난폭한 파울이 없는 열정적인 배드 보이스다.

 피스톤스는 88∼89시즌 중 팀의 득점원이지만 개인 플레이를 한 아드리안 댄틀리를 내보내고 팀워크에 충실한 마크 어과이어를 데려왔다. 데니스 로드맨과 빌 레임비어 등 허드렛일을 즐기는 선수들이 역시 수비가 뛰어난 가드인 아이제이아 토머스, 조 두마와 함께 뭉쳤다. 그들은 챔피언전에서 카림 압둘 자바와 매직 존슨이 버틴 난공불락 LA 레이커스를 무너뜨렸다.

KT&G도 그랬다. 욕심 많던 단테 존스와 수비보다 공격 위주였던 양희승을 내보내면서 진짜 배드 보이스가 됐다. 은희석은 발바닥 수술을 미루고 경기에 나서고 있으며 황진원은 “개인 기록 욕심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막내 인 양희종도 “내 점수가 적거나 누가 나를 몰라줘도 팀이 이기면 그만”이라고 한다.

거짓말이 아니다. 은희석이나 양희종이 수비를 할 때 표정을 보면 안다. 상대의 속공을 황진원이 얼마나 빨리 쫓아가는지 보면 안다. 김일두나 이현호가 자신보다 키가 10㎝ 이상 큰 서장훈(KCC)이나 김주성(동부) 몸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한편, 1위 동부는 13일 원주 홈에서 열린 서울 SK전에서 부산 동아고 선후배인 강대협(19득점)·김주성(24득점)의 활약을 앞세워 85-67로 이겨 2위 KT&G와의 승차를 2.5게임 차로 벌렸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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