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런 과학] 청양고추와 우유는 '찰떡 궁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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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최근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예방에 한국의 매운 김치가 효과적이라고 해 중국 등지에서 많은 사람이 매운 한국 김치를 찾고 있다.

김치가 매운 맛을 내는 이유는 전통적으로 한국의 음식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고추 때문이다. 고추는 식욕을 증진시키는 작용이 있어 대대로 한국음식 가운데 맛을 더하기 위해 다량의 고추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일부에서 다이어트를 위해 맵기로 소문난 청양고추를 거침없이 먹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매운 고추를 먹으면 온몸에서 열과 땀이 나면서 살이 빠진다는 원리다.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즉 몸에서 열이 발생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혀가 타들어가는 고통은 정말 감내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혀의 고통을 식히기 위해 물을 벌컥벌컥 마시지만 일시적으로 괜찮은 듯하다가 금세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기 일쑤다. 그러니까 물을 마시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즉 혀에 묻어 있는 매운 화학물질 성분을 물이 씻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을 마시면 혀끝에 타는 듯한 감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저 물의 일시적인 냉각작용으로 인해 혀끝에 있는 고통을 감지하는 신경이 잠시 둔해지는 데 따른 현상일 뿐이다.

화학자들은 '비슷한 유끼리 서로 잘 녹인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극성인 물질은 극성인 물질에 잘 녹고 비극성인 물질은 비극성인 물질에 잘 녹는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극성인 물질은 비극성인 물질과는 상극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극성인 물은 비극성인 기름과는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추의 매운 맛은 캅사이신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이다. 이것은 비극성 물질이다. 후추와 같이 맛을 내는 식품 속에 들어 있는 매운 화학물질 대부분이 비극성 물질이다. 따라서 이런 물질들은 극성인 물에 잘 녹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분들은 비교적 알코올이나 기름 등에 잘 녹는다. 결국 혀의 매운 맛을 없애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알코올이 들어있는 술을 마시거나, 우유.아이스크림.땅콩.버터와 같이 지방이 다량 들어있는 것을 마시거나 먹는 것이다.

그러나 체중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매운 고추를 먹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열을 밖으로 발산해 칼로리를 소비해야 하기 때문에 미래의 날씬해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최정훈 한양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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