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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만 선생’이라면 제일 좋겠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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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석연치 않은 선정 과정과 별개로 나는 김구가 최상의 선택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달리 대안은 없었는지 아쉽다. 도진순 창원대 교수의 지적대로 우리가 ‘백범 신화’에 너무 젖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김구는 해방 후 한때 “우리는 죽음으로써 이승만 박사께 복종하기를 맹세합시다”라고 외쳤다. 1947년 11월 30일과 12월 1일 이승만과 회담한 후 “이승만 박사가 주장하는 정부는 내가 주장하는 정부와 같다”는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러나 불과 하루 뒤인 12월 2일 한국민주당 정치부장 장덕수가 암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 및 단독정부론과 결별한다. 학자들은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김구를 이승만이 감싸지 않은 것이 김구의 노선 전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때부터 김구는 통일·민족주의자로 거듭난다. 48년 4월 19일~5월 5일에 걸친 김구의 북한(북조선) 방문은 그 절정이었다. 그러나 “담판을 해보아서 안 되면 차라리 38선을 베개 삼아 자살이라도 함이 마땅하다”며 감행한 그의 평양 방문과 남북 협상은 결과적으로 김일성에게 이용당한 측면이 강하다. 순수 민족주의자 김구의 정치적 과오다. 북한은 요즘도 김구가 김일성의 뒤를 따라다니는 이미지로 촬영한 당시 사진을 짭짤하게 써먹고 있다.

49년 6월 26일 암살당함으로써 김구는 신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가 부르짖은 민족통일·평화국가 건설의 강력한 당위성 덕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에 반대하고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이용당한 점이 나는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존경해 마땅한 분이지만 10만원권 초상인물의 1순위감으로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다.

김구와 반대로 이승만은 말년의 독재 때문에 초상인물 후보로 거론하기도 어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신생국의 정체(政體)와 노선을 확립한 그의 현명함과 국제감각은 김구의 현실정치 업적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정치는 증류수같이 순수한 세계가 아니다. 만일 김구가 더 살아 정권을 잡았더라면 대한민국이 많이 고단했을 것이라고 나는 상상한다. 결국 김구와 이승만의 차이는 이상과 현실, 이데아와 실제 세계, 파토스와 로고스의 차이에 비교할 수 있다. 어떤 나라든 이승만류의 현실 감각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김구 같은 영원한 사표(師表)도 몇 분은 모시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바라기로 치자면 두 사람을 합쳐 놓은 유형의 인물, 그러니까 ‘김승만’이나 ‘이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도 10만원권이든 50만원권이든 서슴지 않고 후보로 추천하겠다. 그러나 그게 쉽나. 김구는 김구대로, 이승만은 이승만대로 각각의 장점을 꼽아 존경하는 수밖에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물은 그 나라 사람 속에서 배출된다. 국민의 역량과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인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이번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유력 후보 모두가 우리 국민이 딱 우리 수준에 맞게 배출한 인물들이다. 김구 선생과 이승만 선생을 합친 ‘김승만 선생’이 12명 속에 들어 있다면야 제일 좋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띄지 않는다(하긴, 김구나 이승만 정도의 사람이 포함돼 있기만 해도 큰 복이겠다). 그렇더라도 그중 나은 사람을 고르는 것도 국민된 도리라 생각하고 잘 골라 보자.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