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향한무비워>10.흑백영화 "자전거도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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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로마에 여행자의 가방을 노리는 좀도둑은 많을지언정 이제 자전거 도둑은 사라졌다.그러나 자전거가 자동차로 바뀌었을 뿐 사람들을 지배하는 일상의 틀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1948년 비토리오 데 시카감독(1902~1974)이 체사레 차바티니의 각본으로 제작한 러닝타임 90분의 흑백영화『자전거 도둑(Ladri di Biciclette)』.이탈리아영화사의 이정표이자 완벽한 하나의 역사적 산물로 불리는 이 한편의 영화에는 이탈리아의 전후사회사가 총체적으로 함축돼 있 다.
한 실업자가 구직을 위해 근근이 마련한 자전거를 잃어버리고 이를 찾기 위해 모진 애를 쓰다 결국 자신이 자전거도둑이 되는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사건을 통해 전후 폐허 속 보통사람들의 삶을 거의 완벽하 게 전달한다.
미국 아카데미상이 수여한 외국어영화상은 차라리 작은 액세서리에불과하다.
『자전거 도둑』에는「전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대표작」이란 꼬리표가 늘 붙어다닌다.따라서 이 영화를 이야기하려면 이탈리아 영화산업의 변천을 대충이라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오리얼리즘은 1900년대 전반기에 파시스트의 감시아래 제작된 半관제영화의 작위성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1945년 로베르토 로셀리니감독은 『무방비 도시』를 통해 이제까지 금기시돼온사회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주장을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그는 외국군의 압박에 고통받는 보통 로마시민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네오리얼리즘은 이어 데 시카의『구두닦이』(46년)와 『자전거 도둑』(48년),루치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48년)로 절정기를 맞고 1952년 데 시카의『움베르토 D』를 끝으로 효용성을 다한다.
네오리얼리즘은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삶에 관심을 갖고 다큐멘터리식으로 촬영되며 현실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힌다.따라서 실재하는 장소에서 전문배우가 아닌 사람을 출연시켜 찍는게 보 통이다.『자전거 도둑』의 경우가 바로 전형적인 예인데,세트촬영은 하나도 없고 로마 전역에서 로케촬영했다.등장인물도 일반시민이었다.주인공 안토니오 리치는 철공소 기계공이었고 아들역의 부르노는 로마의 신문배달소년이었다.
둘이 도둑을 추적하던 골목은 현재 대부분 새로운 대리석건물이들어섰다.현대영화산업의 상업성과 규모를 볼때 새로운 시민배우가나오긴 힘들 것이다.그러나『자전거도둑』을 찍은 곳이 어디냐는 질문에 『잘모르지만 분명히 여기 어느 곳일 것 』이라고 말하는로마시민의 말에서 자국영화와 가까이 있고 또 사랑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5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쇠퇴하게 된 네오리얼리즘은 밖으로는50년대 영국에서 다큐멘터리수법을 이용해 감성과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일상적 삶을 개인적으로 그렸던 프리시네마운동을 촉발시켰으며 할리우드에 다큐멘터리식 스릴러영화를 양산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국 내에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페데리코 펠리니 두 거장의 50~60년대 시대를 거쳐 70년대 정치.이데올로기적 발언의 영화로 접맥됐다.현재 뉴이탈리안코미디 시대를 지나고 있는 이탈리아영화는 릴리아나 카바니.푸피 아바티를 비롯 ,타비아니 형제등 걸출한 작가들에 의해 네오리얼리즘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로마=李揆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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