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벗들 섬기기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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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범 대한항공 고문(맨 왼쪽)이 11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선친의 친구들과 함께 건배하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자네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친을 닮아 가는구먼. 이젠 친구처럼 느껴져.” “저는 갈수록 어르신들이 제 아버지처럼 느껴지는걸요.”

11일 오후 서울 신촌의 어느 한정식 집에서 60대 신사와 80대 중반의 노인 다섯 명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웠다. 백발의 60대 신사는 무릎을 꿇고 노인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술잔을 권하며 근황을 물었다.

한상범(61) 대한항공 고문은 매년 12월 선친(한동수씨)의 기일 무렵 아버지의 고교 동창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부친이 작고한 이듬해인 1998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자리를 마련했으니 올해로 10년째다.

이날 모임에는 성악가 조주호씨, 곽봉록 전 한독친선협회장, 박창서 변호사, 이극호 전 홍익회 회장, 이순재씨 등이 참석했다. 첫해에는 20여 명이 함께했지만 세상을 뜬 사람이 생겨 참석 인원이 점점 줄고 있다.

한 고문과 선친, 그리고 아버지 친구분들은 모두 휘문고 동문이다. 한 고문은 선친과 같은 대학, 같은 과(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고 고교 때 응원단장을 역임했다는 공통점까지 있다.

 한 고문은 “기일에 제사 지내며 아버지를 기리는 것도 좋지만 아버지와 가까웠던 분들을 모시면 아버지가 곁에 계신 것 같아 좋다”며 “한 분이 나오실 수 있더라도 모임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조주호씨는 “친구와의 70년 우정이 아들 대까지 이어지니 얼마나 흐뭇한가”라며 “연말만 되면 이 모임이 너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한 고문은 대한항공에서 35년간 근무하다 부사장을 끝으로 지난해 말 일선에서 물러났다.

글=이재훈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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