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교수의열린유아교육] 아기는 사랑·희생의 거름으로 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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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울어대는 돌 된 아기 때문에 화가 난 20대 엄마가 너무 신경질이 난 나머지 아이를 방 안에 놓아둔 채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풀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고 그 엄마는 대단한 양육 방법을 발견한 것처럼 이야기했는데 난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원인도 없이, 지속적으로 울어대는 아기를 본다는 일은 고통이다. 그러나 아기가 우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배고프다거나, 어딘가 고통스러운 구석이 있다거나, 심심하니 놀아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모호한 원인이지만 “나 좀 사랑해 주세요”라는 울음은 구체적인 원인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정말 어렵다. 어떤 사람은 이유 없이 울어대는 아기가 미워 마구 패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 울어대는 아기를 돌보는 일만큼 어른들을 힘들게 하는 일도 없다. 우리 집 외손녀도 아기 때 정말 심하게 많이 울었다. 이것저것 다 해 주어도 고집스레 울어댈 때는 속수무책이었다. 화난 아이 외할아버지의 “아니 아이 버릇을 잘 들여야지 무슨 유아교육 전문가가 아이 울음 하나 못 그치게 해”하는 핀잔을 들으며 난 어디서 데리고 온 아기인 양 가족들을 피해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레지던트로 바빠 아기와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거니 이해하며, 안고 노래 불러주고 등을 토닥거려주는 등 온갖 사랑의 표현을 다했다. 언젠가 마음에 사랑이 차면 웃을 수 있게 될 것을 굳게 믿으면서. 그 아이는 지금 당당하고 자신감 있으며 엄마의 직업을 이해하는 의젓한 초등학생으로 잘 자라고 있다. 아기들은 말로 자기 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는 울음이 의사소통 방식이다. 울음 대신 말로 의사표현을 하게 하기 위해 어른들은 아기를 계속 사랑하고, 관찰하고, 반응해 주고, 말 걸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되어 아이도 편안해지고 어른의 고통도 줄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성 발달의 8단계 이론을 발표한 에릭슨에 의하면 제일 첫 단계는 돌 전후까지로 신뢰감이 생겨야 하는 시기이다.

예로 든 아기처럼 자신의 욕구가 크고 작은 일로 거절되는 경우가 반복되면 아기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것이고, 이 감정은 뇌에 불신감으로 각인되어 성장한 후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아기는 누군가의 사랑과 희생을 받으며 자라는 존재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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