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오정희 6년 만에 신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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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소설가 오정희(57)씨가 문단 데뷔 36년 만에 첫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18일 발간되는 계간 '문학과 사회' 2004년 봄호에 첫회분이 실린 '목련 꽃 피는 날'이다.

'목련 꽃…'은 오씨가 1998년 계간 '작가세계'에 단편 '얼굴'을 발표한 지 6년 만에 내놓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으로 등단했다. 그동안 네 권의 창작집과 한 권의 중편을 내며 이상문학상.동서문학상.독일 리베라루트 문학상 등을 받았지만 원고지 약 5백장 분량의 '새'가 가장 긴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은 겨울호까지 네 차례에 걸쳐 1천장 분량으로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오씨는 "글의 길이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인간 내면세계의 넓이와 깊이를 표현하려다 보니 제법 길어지게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간 작품 활동이 뜸했던 이유에 대해 "나이가 들수록 글쓰는 게 무서웠다.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보다 실제의 삶이 훨씬 진실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부담됐다. 과장이나 미화없이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게…"라는 답이 돌아왔다.

'목련 꽃…'은 어느 화창한 봄날 작가인 주인공이 춘천에서 고향이자 자신이 대표적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던 인천을 향해 출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이 그곳에서 중국인 거리와 공원을 찾아가 유년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게 첫회분 줄거리다.

오씨는 인천의 중국인 거리 바로 옆 동네에서 자랐다. 그 인연으로 지난해 수능시험 지문에도 등장했던 '중국인 거리'(1979)를 썼다. 게다가 현재 춘천에 살고 있으니 소설은 마치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듯하다. 오씨는 그러나 "자전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인 거리'의 주인공 소녀가 어른이 된 모습으로, 하나의 공간에서 한 사람의 과거.현재.미래의 삶이 그려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에는 '한국 여성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언어의 미학을 발휘한다'(인터넷 사이트 '네이버' 의 프로필)고 평가받는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깊이있는, 때론 존재의 바닥을 건드리는 듯한 표현들이 여전히 살아있다.

'저절로 벌어진 가운 앞섶으로 벗은 몸이 드러났다. 도발적으로 솟았던 가슴은 순응의 자세로 늘어지고 아이를 품고 둥굴게 부풀었던 배는, 그 부풀음을 견디지 못해 입은 열상으로 희끗희끗한 빗금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어딘가, 무엇인가를 향해 한순간도 진행을 멈추지 않는, 잉태와 수유의 기억, 저작과 쾌락과 치욕의 기록들이 저장된 몸은 대지를 향해 촛농처럼 둔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시들어가는 몸에 꽃이었던 시절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오씨는 '목련 꽃…'은 장편이지만 시간적 배경은 단 하루에 그칠 것이라고 귀띔했다. 자라난 동네로 떠났던 중년 여성이 짧은 방황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현재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오래 못 썼다는 부담 때문에 더욱 글쓰기가 두려웠지만 글을 쓸 때의 쾌감이 그리웠다. 이번 글을 계기로 앞으로는 자주 글을 발표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기대를 조금 부풀려도 될 듯싶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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