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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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그리고,산 자도 말이 없었다(7) 『아저씨,아저씨 이러시면 안돼요.좀 참으세요.』 매달리는 화순을 뿌리치며 명국이 마키노를 향해 내쳐 소리쳤다.
『이 새끼들아.조선놈은 밸도 창자도 없는 줄 알았더냐.멀쩡한놈 다리 뭉텅 잘라놓고 뭐가 어째? 조센징이 뭐 어떻다구? 느이 쪽발이 놈들을 내 언제는 사람으로 본 줄 아느냐.나와,다 나오란 말이다.』 마키노가 더 다가서지 않고 계단 위쪽에 멈춰선 채 말했다.
『왜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그러십니까?』 『시끄러워 이 새끼야.맞아 죽고 싶지 않거든 내 눈앞에서 썩 없어져 버려.상판대기를 그냥 짓이겨 놓을테니까.』 화순이 휘청거리는 그의 몸을 부축하면서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마키노를 향해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별일 없을테니,조금만 들어가 계세요.』 『마,그거야 그렇지만…환자가 이러면 안되는 겁니다.』 『또 규칙이냐 이 새끼야.
』 조선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마키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안으로 들어갔다.
목발을 짚고 서서 명국이 말했다.
『썩어문드러질 놈의 세상.못난 것도 서러운데,나 하나 못나서이 고생하면서 예펜네 자식한테 못할 짓하며 산다 그것만 생각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데,뭐가 어째 조센징은 다 왜 그 모양들이냐구!』 목소리를 낮추며 명국이 화순의 등을 두드렸다.
『가거라.내 너한테 오늘 못할 말 많이 했다만 한풀 접고 생각하거라.다 너 잘 되라고 한 소리다.길남이 그놈 잘 되라고 한 소리다.너희들 둘이 잘 돼야 무슨 뒤끝이 있어도 있을 거 아니냐.』 『그럴게요.저 때문에 공연히 아저씨만 나쁜 사람 되는 거 같아…죄송해요.』 『허튼 소리 그만하고 가 봐라.사람의목숨,한번 죽지 두번 죽지 않는다.』 병원 문앞에 목발을 짚고서 있는 명국을 뒤로 하고 화순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누구에게 잘잘못을 따지랴.아저씨 말처럼,하늘하고 땅이 그냥 맷돌질을 해도 시원치 않을 이 하루살이,어디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우린 또 살아가 야 하는 거겠지.
고개를 숙이고 화순은 밤길을 걸어내려갔다.이따금 별빛 가득한하늘을 쳐다보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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