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없는 크리스마스는 포도주 없는 식탁과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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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랑스에서 '호두까기 인형' 없는 크리스마스는 포도주 없는 저녁 식탁과 같다."

지난달 말 파업으로 한 달 넘게 문을 닫은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노동조합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들고 있던 피켓의 내용이다.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선 문화인들이 거의 매일 같이 모여 "예술 상품을 볼모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짓을 당장 그만두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파리가 자랑하는 가을.겨울의 특별한 선물인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6주째 사라졌다. 이 때문에 오페라 가르니에와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6주 동안 열릴 예정이던 공연 17개가 취소됐다. '라 트라비아타'와 '호두까기 인형' 등 오래전에 매진된 공연이 모두 취소되는 바람에 최근까지 4만8000여 명의 손님이 오페라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현재까지의 손실액은 310만 유로(약 43억4000만원). 르 몽드는 12월 말까지 파업이 이어질 경우 손실이 800만 유로(약 112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오페라 노조가 장기 파업에 들어간 이유는 프랑스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안에 반대해서다. 그러나 이를 두고 노조에서조차 말이 많다. 오페라는 옛 퇴직제도를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오랫동안 수혜자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일간 르 파리지앵은 오페라 직원 1600여 명은 루이 14세 때부터 내려오는 연금제도를 아직도 적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용수의 경우 40세에 퇴직이 가능하며 기술직은 55세다. 이른 퇴직은 결국 일을 조금만 하고 바로 연금 수혜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비난을 의식해 상당수 노조원은 이미 지난달 중순 파업을 풀었다. 현지 일부 언론은 "현재 남아 있는 5% 안팎의 강성 노조원들이 공연을 방해하고 있어 오페라 측에는 막대한 손실을, 파리 시민에게는 문화 향유권을 앗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 노조원들은 대개 의상과 기술 담당 직원들이어서 이들이 파업을 계속할 경우 공연 개최가 어려운 상황이다. 상당수 파리 시민은 "오페라와 발레의 계절인 가을.겨울이 몇몇 사람 때문에 날아가 버렸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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