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만찬사를 의회연설 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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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9박10일간의 亞太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 참석과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등 3개국 순방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실무 차원에선 아쉬움을 남기게한 대목이 없지 않았다.
지난 17일 저녁 호주 국회에서 열린 폴 키팅총리 주최 만찬이 그 한 예다.청와대에서는 출발전『金대통령이 호주에서는 사상처음으로 상.하양원에서 연설한다』고 설명했고『상.하양원 주최 만찬에 참석한다』고도 말했다.기자들에게 배포한 행사 세부설명서에는「상.하양원 연설 및 만찬」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러나 호주정부의 초청장에는 물론 만찬 테이블에 놓인 메뉴판에도 키팅총리 주최의 金대통령 내외초청 만찬임이 분명히 표기돼있었다.상.하양원 의원이 일부 참석하기는 했지만 우리 교민들과金대통령을 수행한 기업인도 참석했다.호주 의회 초청만찬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 金대통령이 상.하양원에서「연설」하는 것이 아니라「만찬사」를 하는 형식이었으며 다만 만찬장소가 호주의회 의사당이었다.
우리 외무부,또는 청와대중 어느 곳에선가 金대통령의 호주방문홍보효과를 노려 상.하양원 연설과 만찬으로 과잉 포장했다면 이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행위다.
이에앞서 외무부 관계자등 실무진들은 지난 15일 APEC정상회담에서 金대통령이 18개국 정상중 가장 먼저 발제연설을 할 것이라고 사전에 발표했는데 이것도 현장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드러났다.金대통령은 국명(國名)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일곱번째로 발언했으며 모든 정상들이 5분간씩 연설했다.엄격히 발제연설이 아니었다.
보고르선언에서 우리가 선진국과 같은 무역자유화 목표연도 2010년군(群)에 속할 뻔한 대목도 그 과정을 짚고 넘어가야 할부분이다.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이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국을 개도국群의 무역 자유화 목표연도인 2020년으로 해주기로 약속했으나 약속을 어기고 정상회담 현장에서 2010년으로 밀어붙인 것』으로 돼 있다.이 때문에 金대통령은 14,15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실무 과장급 수준」으로 뛰었다.
그러나 이들의 변명처럼 수하르토 대통령이 당장 드러날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그가 우리를 속여 인도네시아의 국익에도움이 될 사안도 아니었다.
단순한 실수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과장 홍보나 허위 보고는 金대통령이 외치고 있는 세계화에 역행하는 행위다.아직도 시대의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지 않나 점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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