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아시아 합중국을 꿈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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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유엔 사무총장을 맡기 전 나는 아시아의 외교관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국 정부와 나는 북한과의 화해를 적극 주창했다. 일부 국가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징벌을 요구했을 때도 한국은 대화 방침을 고수했다.

대화는 자기 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포함한다.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대가 때로 비이성적이고 고집스러워 보일 때라도 말이다. 이러한 입장은 유엔에서도 그대로 지키고 있다. 나는 외교와 포용의 힘을 믿는다. 논쟁과 선언보다 대화를 선호한다.

이 같은 정책을 우리는 지금 미얀마에서 펼치고 있다.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 특사가 미얀마 양곤을 방문하고 왔다. 그의 임무는 미얀마 정부와 야당 지도자들, 특히 아웅산 수치 여사와의 대화를 성사시키는 중개인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미얀마 정부가 억류 학생과 시위 참가자들을 석방하고, 야당과의 대화에 나서며, 좀 더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조치들을 취하면서 국제사회에 다시 합류토록 하는 것이다.

이런 외교적 노력이 단시일 내에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갈등 당사자들로부터 좀처럼 환영 받기 힘들고 가시적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조용하면서도 인내를 요하는 무대 뒤의 활동 같은 것이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일을 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것은 더 큰 결과를 향한 작은 발걸음들이 만들어내는 교향악이다. 교향악이 때론 불협화음을 낼 수도 있다. 성과가 나올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성과가 없더라도 다른 식으로 더욱 노력을 해야 한다.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사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나는 갈등의 당사자인 수단 정부와 반군 지도자들, 이웃 국가와 아프리카연합(AU) 등과 수백 시간의 막후 협상을 벌여왔다. 우리는 또 리비아의 힘겨운 평화 협상을 지원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을 보호하면서 역사상 가장 복잡한 평화유지 활동 가운데 하나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아시아적’ 외교 활동을 펼치면서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이 외롭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크며,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 성장 속도도 가장 빠르다. 동시에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도 갖고 있다. 그러나 국제문제에서의 비중은 기대만큼 크지 못하다. 유엔에서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더 커져야 한다. 인도적 구호활동도 기대에 못 미친다.

아시아는 역내 통합과 공동시장 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유일한 대륙이다. 중남미와 북미는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꿈꾸고, 유럽은 단일국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도 아프리카 합중국 건설을 열망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시아 합중국 건설은 안 된다는 말인가?
물론 아시아만의 특수성이 있을 수 있다.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 끊이지 않는 정치·영토 분쟁, 다자간 협력 경험의 부족, 한두 국가에 집중된 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인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나는 변화를 보고 싶다. 아시아가 더욱 통합되고 국제사회와 연계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특히 나의 조국인 한국이 큰 일을 해나가길 기대한다. 한국이 발전하는 경제력에 걸맞게 국제사회에서 더 많은 책임을 떠맡길 바란다. 한국은 국제 무대에서 더 큰 목소리를 내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 시발점이 대외 원조 확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북핵 6자회담에서 다자 외교의 수완을 보여줬다. 이제 한국과 아시아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성공 경험을 국제 현안 해결 과정에 쏟아 부어야 할 차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번역=유철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