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인사이드] '브랜드 감독' 수석 디자이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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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패션계의 화제는 단연 구찌와 톰 포드입니다. 지난달 14일 톰 포드는 구찌에서의 마지막 남성복 패션쇼를 치렀습니다. 이에 전 세계 유명 패션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그는 지난 13년간 구찌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구찌를 떠나며 어떤 작품을 내놓는지 궁금했던 것이지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우리말로는 수석 디자이너 정도로 번역되는 그의 존재는 구찌에선 절대적이었습니다. "기울어가던 가방 회사 구찌를 세계적인 패션회사로 바꾼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죠. 지난해 11월 구찌의 수석 디자이너 톰 포드와 사장(CEO) 도미니크 데 졸레가 동반 퇴진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구찌 최대 주주인 PPR그룹의 주가가 하루 만에 4.8%나 떨어졌을 정도였습니다. 외신들도 '구찌가 흔들리고 있다'는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습니다.

도대체 수석 디자이너가 어떤 존재기에 이처럼 주목을 받는 걸까요. 수석 디자이너라고 하면 디자인 실장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실제론 그 이상입니다. 옷의 주제를 정하는 일부터 주요 색상과 세부적인 장식에 이르기까지 옷의 모든 것이 그의 몫입니다. 그가 '이번 시즌의 주제는 여행'이라고 한다면 그 브랜드의 전 매장에는 그가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제품들이 일제히 진열돼야 합니다. 관계자들은 "수석 디자이너는 그 브랜드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수석 디자이너가 새로 영입되면 브랜드가 확 바뀌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1998년 존 갈리아노를 수석 디자이너로 받아들이며 브랜드가 한층 젊어졌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파격적인 그의 디자인은 디오르를 유행에 앞서가는 브랜드로 만든 겁니다.

에르메스는 지난해 장 폴 고티에를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했습니다.장 폴 고티에는 가수 마돈나의 원뿔 모양 브래지어 등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여온 인물로 에르메스와 어떤 조화를 이뤄낼지 주목되고 있답니다. 이런 경우는 디자이너 개인의 창의성과 거대 패션기업의 경영능력이 조화를 이룬 경우라 할 수 있죠.

국내의 사정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그런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잘 팔릴 만한 옷을 회사의 주문에 맞춰 만들어내는 기술자에 그치거나, 디자이너가 직접 옷을 만들고 판매까지 책임지는 부티끄, 혹은 의상실(?) 수준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올해 제일모직이 스타 디자이너 정구호씨를 영입해 여성복 '구호'를 내놓은 것은 주목되는 일입니다. 영화 '정사''스캔들'의 아트 디렉터로 유명한 정구호씨는 ㈜F&F.쌈지 등 중견 패션회사를 거쳤습니다. 그의 창조성을 담은 브랜드 '구호'가 제일모직이라는 의류 대기업을 배경으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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