投書질에 금융자율화 멍든다 司正편승 문민정부 출범후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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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금융계의 뿌리 깊은 고질병인「투서(投書)질」이 다시 온 금융계의 「눈총」을 받고 있다.
올해도 지난 2월말 은행의 정기주총에 즈음해 연례행사처럼 기승을 부리다 한동안 잠잠하던 투서질이 윤순정(尹淳貞)前한일은행장의 급작스런 퇴진을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尹행장 본인이 「후진을 위한 자발적 결단」이라고 밝 힌 퇴진도 근본적으로는 투서에서 시작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고 실제로 대부분이 그렇게 믿고 있다.
금융계의 투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과거에도 정기주총철이 되면 각종 투서가 난무했다.그러나 특히 작년초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사정의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면서부터 훨씬 심해졌고 올 은행 정기주총을 앞둔 작년말과 지난 1 월께는 극에달했다.새 정부 들어 줄줄이 은행장들이 옷을 벗은 것에 이런 투서들이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은 금융계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투서의 내용은 주로 「…는 모처(某處)에 숨겨 놓은 여자가 있다」「某회사와 거래를 하면서 거액의 커미션을 받았다」는 등 특정인의 비리를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상은 주로 기관장인 은행장과 임원들이지만 때로는 승진을 앞둔 고참 간부들의 「발목」을 잡기 위한 폭로성도 적지 않다.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주총이 가까워 지면서 투서가 난무해 처음에는 금융계가 왜 이렇게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심 한가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청와대 사정팀이나 검찰,그리고 은행감독원 등은 투서를 처리하는데 있어 무기명(無記名)인 경우는 무시한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 정부관계자는 『무기명이기는 하지만 투서의 내용이 무시하기어려울 정도로 확실한 근거를 가진 경우는 이를 근거로 조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다른 곳보다 하필이면 금융계에이처럼 투서가 난무하는 것은 무엇보다 은행인사 에 정부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계 스스로의 불만이다.투서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상대방을 끌어내리기 위한 투서가 끊이지 않는 것은투서가 그만큼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눈으로 보아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은행임원은 『애당초 권력층이나 정치권이 은행장이나 임원 인사에 일일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라이벌을 꺾기위한 수단으로 투서가 난무하기 시작한것이 투서의 근원』이라며 인사자율화만이 투서를 없앨 수 있다고 지적했다.자성(自省)의 목소 리도 적지 않다.S은행의 某전무는 『투서는 우리 스스로가 금융자율화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며 『누워서 침 뱉는 식의 추태를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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