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盧 캠프에 준 돈 털어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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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서는 기업 총수도 구속 대상이 된다."

안대희(安大熙)대검 중수부장은 15일 정치권에 불법 대선자금을 건넨 기업인들 가운데 일부에 대해 사법처리를 시작할 방침을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불법 대선자금 전달 사실을) 자발적으로 진술할 경우 사법처리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金회장이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의원에게 채권 10억원어치를 주었다'는 내용의 팩스를 검찰에 보내줬기 때문에 최소한 구속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이번 외에도 삼성.LG.현대차.SK 등 대기업들을 상대로 한나라당에 건넨 불법대선자금을 수사하던 지난해 12월 초 "진실을 밝히는 기업과 이를 거부한 기업들은 처리에서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라는 엄포를 놓았다.

이 덕분인지 검찰은 이들 대기업이 거액의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밝히는 데 성공했다.

결국 安부장이 15일 일부 대기업 총수의 구속 가능성까지 들고나온 것은 이들에게 2002년 대선 때 당시 민주당에 지원한 불법 자금을 자발적으로 털어놓으라고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4대 기업이 한나라당 측에 약 5백2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건넸다는 사실을 밝혀내 놓고 있다. 게다가 삼성의 추가 지원 의혹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되면 한나라당의 불법 자금은 6백억원대를 훨씬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는 4대 기업이 공식 후원금 외에 불법으로 민주당에 준 돈은 없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한나라당보다는 적겠지만 민주당에도 어느 정도의 불법 자금을 지원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바로 이 부분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들의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하려던 검찰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현재 4대 기업과 민주당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 단서나 증거를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별다른 단서도 없이 기업 총수 사법처리를 카드로 내세워 민주당 부분에 대한 자백이나 진술을 얻으려는 검찰의 수사 방식에 대해 기업인들은 물론 검찰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 비리 수사에 경험이 많은 몇몇 검찰 중견간부는 "중수부가 이른바 '한나라당:민주당=6백:0'을 극복할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추측이나 정황만을 근거로 기업 총수들까지 압박해 가면서 자백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수사기법이 아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또 "기업 총수들을 꼭 사법처리할 필요가 있다면 적당한 시기에 하면 되지만 확정되지도 않은 방침을 흘려 기업들이 흔들리게 만드는 것은 그동안 '경제에 미치는 피해는 최소화하겠다'던 약속을 수사팀 스스로 파기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검찰은 한나라당에 대한 불법 대선자금 전달 경위를 밝히기 위해 삼성구조조정본부 김모 사장을 17일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한다고 15일 밝혔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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