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탕진 장애인 아들 꾸짖다 과실치사 70대 모정에 법도 관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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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8일 대구지법 21호 법정에서는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이 울려 퍼졌다.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제3형사단독 한재봉 판사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는 김모(71.여) 피고인에 대해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판결하면서 이 시를 인용했다. 김씨는 올 3월 왜소증을 앓는 장애인 아들인 A씨(49)를 실수로 숨지게 한 혐의(과실치사)로 불구속 기소됐다.

한 판사는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피고인은) 장애 아들을 둔 운명 때문에 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 남몰래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다. 비록 아들을 죽였지만 피고인 역시 아들의 죽음으로 누구보다 큰 슬픔과 정신적 고통을 겪은 또 다른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김씨가) 50년간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헌신해 왔고, 아들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다가 이 사건이 발생했다"며 선고 유예 이유를 설명했다.

사건은 키 1m10㎝의 아들이 가산을 탕진하자 어머니 김씨가 꾸짖다 발생했다. 김씨는 아들에게 월 생활비로 100만원을 줬다. 하지만 아들은 유흥비로 돈을 날리고 빚까지 졌다. 이를 안 김씨가 아들의 빚 2억원을 갚아 주고 전세 보증금 3000만원과 구두수선점 보증금 800만원을 줘 일하도록 했으나 낭비벽은 여전했다.

휴대전화를 3대나 구입하고 할부로 차량 2대를 사 이를 되파는 '자동차깡'까지 했다. 분개한 김씨는 거실에서 과도를 들고 아들을 꾸짖었다.

"할부 차량을 팔고 할부금을 넣지 않으면 사기꾼이다. 자수해라…."

이때 아들이 김씨에게 반항하면서 소파에서 갑자기 일어나다 김씨 쪽으로 넘어지면서 김씨가 들고 있던 과도에 찔려 숨을 거뒀다. 아들은 키가 작고 머리가 커 소파에서 일어나다가 앞으로 쏠린 것이다. 검찰은 정상을 참작해 김씨를 불구속 기소해 징역 1년을 구형했고, 재판부 역시 이날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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