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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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정말이지 오늘은 무슨 특별한 예를 들고 뭐고 할 필요도 없어.너흰 두말할 필요도 없는 놈들이란 말이야.동급생의 부모님들을 간이 다 떨어지게 만들어 놓구도 어떻게 그런 멀쩡한 표정들을 하고 있을 수가 있느냔 말이다 이 녀석들아.$ 교장선생님은말하다 말고 한동안 침묵하셨다.내게는 오히려 교장선생님이 막상우리를 불러놓고는 우리보다 더 난감해 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그런 원칙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됐다는거 배웠지.그렇게 해가지고는 아무 것도 해결이 나지않는 거야.이에는 치약 눈에는 안약,이런 정신으로 상대를 대해야 진짜로 이길 수가 있는 거라구.내 말 모르겠 니.그런데… 그런데 너희들은 말이야,일당 백으로 원수를 갚겠다 이거냐.내 참 기가 막혀서….이러다간 결국 너희들이 다치는 거야.내 말 알아 듣겠어…?』 교장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다가 또 한동안 쉬었다가 하면서 한참을 말씀하셨는데 무슨 결론이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마침내 교장선생님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셨다.
『난 딱 부러지게 묻기도 싫어.여자애들 집에 전화를 걸어서 부모님들을 경찰서로 나오라고 한 게 너희들인지 누군지 말이야.
정말 난 그런 거 알고 싶지도 않다니까.또 막상 너희들이 그랬다고 자수를 해도… 실정법에도 다른 물증이 없으면 자백만으로는처벌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내가 뻔히 다 알고도 너희들을 처벌못하면 또 분통이 터질 테니까… 그렇다고 또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고 넘어갈 수도 없고….』 교장선생님이 우왕좌왕하셨지만 우리는 그래도 교장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하시는 건지 다 알 수 있었다.하여간 덕순네 엄마들이 학교당국에 밝힌심증만 가지고는 우리가 처벌당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월요일에는 덕순이와 현주도 등교했다.고것들은 다 겉으로는멀쩡한 척했지만,우리는 걔네들이 집에서 얼마나 끔찍하게 당했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덕순이 아버지는 예비역 대령이었는데 딸들에게도 군대식으로 가차없다는 거였다.그런가 하면 현 주 아버지는 얼마나 결벽증이 심한지 하여간 덕순이네 패거리들과 금요일날미팅을 가졌던 재수생들까지 불러내서 단단히 혼쭐을 냈다는 정보를 우리는 이미 입수하고 있었다.
우리는 교실에서도 무조건 덕순이네 계집애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했다.걔네들이 우리 악동들을 쏘아보는 눈빛은 지글지글 타오르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부러 우리끼리만 눈을 맞추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하하하 크게 웃고는 하였다.
어떤 누나가 목공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고,중학교 꼬마 하나가 우리반으로 찾아와서 비밀을 전하듯이 귓속말로 내게 전해주었다.
꼬마는 무슨 연애라도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점심시간이었다.내가 목공소로 갔더니 예상대로 덕순이가 나를 기 다리고 있었다. 『너흰 비겁한 놈들이야.사내녀석들이 왜 그렇게 널널하니.
』 나는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여기서 잘못 놀았다가는 단번에 박살나기가 십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나는 준비했던대로 오리발을 내밀었다.
『대체 무슨 이야길 하는 거야…? 이러지 마.우리가 널널하게사는데 너희가 도와준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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