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행상도 하며 대학 졸업한 스승 제자들 위해 23억원 내놓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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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감귤 행상을 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이제 돈이 웬만큼 있으니까 제 힘으로 후학들을 돕고 싶습니다.”

재직중인 경희대에 매년 1억원 씩 기부하기로 27일 약속한 한승무(43·사진) 동서의료공학과 교수. 그는 이날 오후 경희대 국제캠퍼스 총장실에서 열린 약정식에서 1억원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이와함께 앞으로도 매년 1억원을 교수 정년을 마칠 때까지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현재 나이를 감안하면 정년 퇴직(65세)까지 그가 기부할 금액은 모두 23억원에 이른다. 한 교수는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힘들게 공부했던 내 자신의 경험이 이같은 결정을 내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경북 영천 가난한 농부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 후 인문계를 포기하고 공업고로 진학했다. 학업 성적은 우수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도시의 인문계 학교로 진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고교 졸업 뒤 영남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방학 때는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각종 아르바이트로 스스로 학비를 만들었다.

그는 겨울 방학이면 본격적으로 감귤 장사에 나섰다고 한다. 매일 새벽 도매시장에서 나가 물건을 구해 밤늦게까지 손수레에 감귤을 싣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팔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몸살과 고열에 시달릴 때가 있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시장과 거리로 나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노점상들과 적지 않은 충돌도 있었다고 한다.

한 교수는 “당시 상황이 너무 힘들었지만 저의 딱한 사정을 알고 굳이 내게서 귤을 사며 덕담을 해주던 단골들 덕분에 기운을 차리곤 했다”고 기억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친 그는 9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 때도 1학기 학비만 겨우 마련해 무작정 출국했단다. 96년 미국 뉴욕주립대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2000년부터 경희대 동서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매년 출연할 1억원의 기부금은 한 교수 자신이 중소기업들에게서 받기도 되어있는 특허 사용료에 교수 연봉 일부를 보태 마련할 계획이다. 그는 초음파로 뇌출혈·골다공증을 진단하는 의료기기 연구를 통해 4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경희대 측은 한 교수의 기부금을 동서의료공학 전공학생과 소외계층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한 교수는 “의료공학 산업은 첨단 기술의 경연장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며 “장학금이 우수 학생들을 도와 국내 의료 산업이 발전하는 디딤돌이 됐으면 한다”며 활짝 웃었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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