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총체극 "영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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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던가.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중인 총체극『영고』(迎鼓)는 결국 주인없는 정체불명의작품이 되고 말았다.총감독(강준혁)과 연출(강영걸),예술감독(김덕수)중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무책임한 결과를 낳았다.음악.
연극.미술.무용.영상을 망라한 토털 크로스오버를 지향했던 이 작품은 애초 의도했던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하고 각 장르의 분열상만을 보여주었다.
부여의 제천의식「영고」에서 힌트를 얻어 천년고(千年鼓)로 상징되는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해 보려는 시도는 그러나 잃어버린 우리의 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극을 상투적인 수준에 머물게 하고 말았다.
사물놀이의 리듬이 무대를 점령함으로써 음악이 반복 위주로 흐를 뿐만 아니라 극적인 요소가 위축되었고,임이조의 무용은 줄거리와는 상관없는 볼거리 제공에 그쳤다.합창을 노찾사에 맡겨버린것이나 신시사이저나 대금 독주,여주인공의 독창으로 장면 연결을시도한 것은 상투적 발상이었다.
텅빈 무대를 가리기 위해 등장한 드라이 아이스의 남용은 결국스펙터클한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웅변해 주고 있었다.피날레 장면에서도 사물놀이 합주단의 객석 진입으로 관객과의 일체감을 노렸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억지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막판에 끼어든 각설이 타령은『영고』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민속 연희의 역량을 총집결하려 했던 총체극은 시도 자체로서 끝나고 말았고,완성도있는 작품과는 거리가 멀었다.이덕화(도깨비두목).권인하(태백).전인권-신영희(귀신)등 스타 연예인들의 퍼레이드,서울 정도 600년,국악의 해,기업과 문화예술의 날을내세운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했다.
〈李長職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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