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의 진실' 다음주 초 결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그래픽 크게보기

BBK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김경준씨의 모친 김영애씨가 23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서류가방을 들고 입국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김씨는 이날 김경준씨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간에 체결했다는 이면계약서의 원본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인천=안성식 기자]

검찰은 23일 김경준씨가 어머니에게서 전달받아 제출한 '이면계약서'의 원본에 대한 감정 작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수사팀이 김씨가 낸 네 종의 계약서 중 가장 주목하는 것은 유일하게 한글로 된 계약서다. 이명박 후보가 BBK투자자문의 주식을 소유했느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이 문서에는 서명이 있는 다른 세 종의 영문계약서와 달리 도장이 찍혀 있다. 따라서 1차적 검증은 이 인영(印影.도장의 형태가 종이에 찍혀 있는 것)이 진짜 이 후보의 도장과 일치하는지를 가리는 일이다. 이 후보 측은 "계약서의 인영은 이 후보가 2000년 4월부터 인감으로 쓴 도장을 본떠 만든 위조 인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영의 형태가 상당히 유사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도장 감정에 밤샘 작업"=수사팀은 이날 대검 문서감정실에 계약서 원본과 이 후보가 2000년 4월부터 쓴 인감도장이 찍혀 있는 문서를 보내 대조 작업을 의뢰했다. 김씨가 제시한 문서가 2000년 2월에 작성한 것으로 돼 있지만 이 후보가 이 도장을 인감으로 등록하기 전에도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검증 결과는 이르면 2~3일 안에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통상 열흘 정도 걸리지만 밤샘 작업을 하면 훨씬 빨리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장이 가장 감정하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말한다. 대한문서감정사회의 한용택 회장은 "같은 도장으로 찍어도 인주를 묻힌 각도와 양, 도장을 찍은 압력, 종이 재질에 따라 크게 다른 형태로 인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장 감정은 서명 대조보다 고난도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영을 20배 정도 확대한 뒤 글자 형태와 마모 정도 등에 따른 30개의 특징을 골라 서로 비교한 뒤 동일한 인장으로 찍은 것인지를 판단한다"고 감정 과정을 설명했다.

◆문서 감정도 병행=수사팀은 도장 감정과 함께 계약서의 진위를 확인하는 문서 감정도 대검에 의뢰했다. 세 종의 영문계약서에 담긴 이 후보 서명의 위조와 계약서 변조 여부가 핵심이다. 서명 감정은 문서상의 작성 시점과 가장 근접한 시기에 이 후보가 했던 서명과 계약서의 서명을 대조하는 작업이다.

대검 문서감정실은 이 계약서의 활자체와 인쇄 형태, 종이 질도 정밀 분석하고 있다. 인쇄가 계약서에 적혀 있는 날보다 뒤에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문서감정실은 ▶이면계약서가 2000년 당시 쓰이던 프린터를 사용했는지 ▶계약서의 활자체(폰트)가 당시 쓰이던 것인지 ▶계약서 종이가 7년 전 것인지 등을 정밀 감정하고 있다. 만약 계약서가 최근 수년 안에 생산된 종이와 프린터를 사용했을 경우 명확한 위조의 증거가 된다. 감정실은 계약서의 종이가 국내에서 생산된 것인지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01년 김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뒤 현지에서 구한 종이로 가짜 계약서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한글계약서의 '이 후보가 김씨로부터 49억9999만5000원을 받고 BBK의 주식을 넘긴다'는 내용과 관련, 실제로 이 같은 돈거래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금융거래 내역도 조사 중이다.

이상언.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