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0. 진해, 환상적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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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피란 시절 일본식 집에서 살던 필자. 하루 종일 게으름을 피우며 놀던 모습인 것 같다.

 “내일은 날이 맑고 바람은 잔잔히 불겠으며 어제에 비해 섭씨 3도가량 높겠습니다.” 가족들을 모아놓고 펼치는 ‘내일의 일기예보’는 인기 만점이었다.

 1951년 피란지 진해,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빈 집이 많은 도시였다. 우리 가족들은 진해에 도착해 버려진 집에서 며칠을 묵고 난 뒤 정식으로 집을 얻었다. 괜찮게 사는 어느 노인이 자신의 아들에게 주기 위해 작게 지은 집에 세를 든 것이었다.

진해는 나에게 꿈같은 추억을 남겨준 도시다. 전쟁도 어린 나의 생활을 폐허로 만들지는 못했다. 우리 집은 양어장(養魚場) 옆에 있었다. 나는 날씨에 관심이 많았다. 이 양어장에 앉아 하루 종일 기상 관측을 했다. 아침을 먹은 후면 시집만 한 권을 들고 날씨를 지켜보러 나갔다. 셔츠만 입고 옛 시조를 읽으면서 하늘을 관찰하면 하루가 금방 갔다. 구름은 어떤 종류가 떠있으며 바람은 어디에서 부는가,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를 하루 종일 혼자 관찰했다. 당시 읽었던 책이 기상에 관련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와 “내일의 날씨는 이럴 것”이라고 말해주면 가족들은 아주 재미있어 했다. 일기예보가 정확히 맞으면 우리 누나는 신기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전쟁 중이라 학교도 갈 필요도 없었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학교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지도 않았다. 기상 관측을 하다가 제비가 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꿈같은 생활이 따로 없었다. 1·4 후퇴 때 내려왔으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곧바로 봄이 왔다. 진해는 벚꽃으로 유명한 도시다. 당시에도 진해에는 벚꽃 천지였다. 집 앞에서 바닷가까지 난 수백m의 길은 일직선이었고 양쪽으로 핀 벚꽃은 하늘에서 서로 붙어 거대한 꽃터널을 만들었다. 자전거를 끌고 나와 길이 시작하는 지점에서 페달을 한번만 구르면 해안가까지 쭉 미끄러졌다. 꽃터널 끝에 둥그렇게 보이는 바닷가는 성냥개비만하다가 점점 커진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바다는 오색 빛깔이 된다. 환상적인 오색 거울이었다. 해안에 도착하면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물새의 발자국과 함께 놀았다. 완전히 어두워지면 자전거를 다시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전쟁은 어린 나의 추억을 많이 망가뜨리지 않았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일이 어렵지 않았고 나 역시 걱정이 없었다. 전쟁통에 고생한 어른들과 다른 사람들의 추억담을 들으면 나는 이 환상적 기억과 함께 적잖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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