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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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더이상 크리스마스 캐럴은 들려오지 않았고,그저 때깔이 빛바랜크리스마스 트리가 시청앞 광장을 비롯한 시내의 곳곳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뉴 이어」라고 쓰인 간판 속에서 「뉴 이어」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 지가 분명하지않았기 때문에「크리스마스」는 거기에 덤으로 끼여서 폐기 시기가연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써니엄마는 크리스마스를 앞뒤로 한 며칠 동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만큼 안절부절못했다.반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는 외딸을 기다리면서 써니엄마도 어지간히 심신이 소진된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써니엄마 자신도 이제는 더이상 써니에게 집착 하지 말고 무언가 자기 삶을 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것같기도 하였다.
메리 크리스마스와 뉴 이어 사이의 며칠동안 써니엄마가 실종자가족협의회에서 얻어들은 정보를 토대로 이곳저곳을 찾아다닌 것도기실은 써니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현실적인 희망 때문이었다기보다는,아마도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써니를 찾을 길이 없다는 절망을 확인하기 위해서,그래서 이제는 써니를 마음에서 지우기 위한 과정이었을지 모르겠다.그건 또 써니엄마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일 거였다.
새해 들어서의 첫 한주일이 지난 다음에,써니엄마의 전화가 걸려왔다. 『…달수가 괜찮다면 몇 군데만 더 돌아봤으면 좋겠거든.』 『그러지요 뭐.가볼만한 곳이 아직도 남았나 보지요?』 나는 더이상의 설명을 듣지 않고 좋다고 말하고 집으로 찾아뵙겠다고 그런 다음에 전화를 끊었다.
『누구야.친구엄마라고 하던데 목소리는 처녀같은데….』 내게 전화를 바꿔줬던 형이 한마디 했다.
『맞아.친구엄만데 정말 처녀같다니까.』 내가 어깨를 한번 들썩 하면서 웃으니까 형도 괜히 따라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더 묻지 않았다.
써니엄마는 기도원 몇군데를 더 가보지 않고는 가볼만한 곳은 다 가봤다고 말할 수 없다고 그랬다.그래서 우리는 이틀 동안에네곳이나 기도원을 찾아다녔다.세상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장소였다.웬놈의 기도원이 세상의 구석구석에 그렇게도 많은지 놀라지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방문한 곳들은 주로 사회에서 공인받지 못한 약간은 독특한 종교에 속한 기도원 들이라고 했다.그렇게 밥만 먹고 변소만 갔다 와서 내내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이만큼이나 유지되는 거라면 세상은 정말이지 한심한 장소라고 나는 생각했다.사람들은 두 손을 하늘로 쳐들고 흔들어대면서 무어라고 계속 중얼거렸고,어떤 이는 눈물을 철철 흘려가면서 무언가용서를 빌고 있었다.몸 안팎의 한구석이 상한 사람들…정신이 고장난 사람…죄가 많다고 스스로 주장 하는 사람들과 유혹 앞에 맞딱뜨린 사람들… 그속에 써니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써니엄마는 「마지막으로」라면서 벽제의 화장터에 가봐야 한다고그랬다.끝내 연고자를 찾지 못한 신원불명의 시체를 화장하는 경우가 있는데,그 기록을 한번 확인해보자는 거였다.거기에는 화장당한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다고 했다.
『차라리 여기에라도 있으면 좋겠어….정말이야.』 화장터의 사무실에 앉아 명단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써니엄마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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