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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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은 자(39) 좋다.혼자일 때의 경우,몸을 움직이기 쉬울 수도 있다.그러나 둘일 때는 그때대로 서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다.
마음 속으로 결심을 하면서 길남은 방파제를 올려다 보았다.저걸 넘어야 한다.저걸 넘으면 그곳은 바다,헤엄쳐 건너야 할 죽음의 물살이 기다리고 있다.그 다음이 땅이다.육지다.
그러나 거기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린단 말인가.몸을 숨겨야 할또 다른 공포,또 다른 죽음이 있을 뿐이 아닌가.쭈그리고 앉아있던 태성이가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성공한다면…그 다음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 『조선사람 찾아가는 길 밖에.』 『그런 조선사람이 있느냐는 얘기다,내 말은.』. 부딪쳐봐야 알겠지.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일이 아니다.고개를 숙이면서 길남은 육손이 아저씨를 떠올렸다.지금으로서는 믿을사람은 그 양반 밖에 없지 않은가.
『우선은,육손이 아저씨를 찾아갈 생각이다.』 『육손이?』 『왼쪽 손가락이 여섯 개여서 다들 그렇게 불러.』 『뭘 하는데 그 사람이.』 『지하 터널 공사를 하는 양반이다.나한테는 잘 해 주던 분이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그 사람과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만약은 생각하지 말자.』 『나도 그러고는 싶다.그런데,아무 대책이 없으니 하는 소리야.』 『나쁜일은,닥치면 그때 생각해야지 별수 없지 않니.』 쭈그리고 앉아서 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나쁜 일은 만나서 그때생각해도 된다.물에 빠지기 전에 바지부터 걷어올릴 건 없지 않은가 말이다.
태성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왜 이렇게 마음이 스산한가 모르겠다.』 『마음 단단히 먹어.여차했다가는 물귀신 되는 거니까.』 『물귀신이 되든 까마귀 밥이 되든,결심한 일이니까 밀고 나가는 거 밖에 다른 수가 없다는 건 나도 알아.그렇지만 마음이 흉흉한 거야 어쩔 수가 없지 않냐.』 고개를 끄덕이며 길남은 화순의 얼굴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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